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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일반/교양 ]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 

교보문고 전자책 스마트폰 태블릿
저자
김재연
출판사
세종서적
출간일
2023.09.05
평점 및 기타 정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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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0 Page 이용가능환경 PC, 스마트폰, 태블릿
서비스형태 EPUB 파일크기 24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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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서평

    넷플릭스, 멜론의 추천 알고리듬을 공공 영역에 도입하면,
    정부 앱이 알아서 내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추천해주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편리해질 수 있을까?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제69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첫 장면에서 주인공 다니엘과 의료수당 지급 담당자가 주고받는 길고 답답한 대화를 보여준다. 평생 목수로 성실히 일해왔으나 심장에 문제가 생긴 다니엘은, 더는 일하지 말라는 주치의의 진단서를 제출하고도 의료수당 심사에서 탈락한다. 그는 항소를 결심하지만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나이 든 노동자에게 인터넷 회원가입, 공인인증서 발급, 수 분 이내의 접수 완료 같은 복잡한 절차는 매번 좌절감을 안겨준다. 두 시간째 연결되지 않는 통화대기음에 지쳐 직접 방문한 관공서에서는, 오늘은 마감되었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는 건조한 안내를 받는다.

    현실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가 기승이던 시절, 스마트폰을 피처폰처럼 쓰거나 쓰지 않던 사람들은 ‘QR코드’를 찍지 못해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가게 입구에서 연락처를 적었다가 모르는 이에게 연락을 받은 사람도 있고, 입장하고도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하지 못해 돌아간 이들도 있다. 한쪽에서 앱으로 백신 접종을 예약할 때, 한쪽에서는 동네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야 했다. 지금도 명절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장 판매용은 티켓 자체가 많지 않거니와 창구도 겨우 한두 개만 열어둔다. 한국인 대다수가 개인 핸드폰을 쓰고 있지만 나이, 지역, 경제적 수준, 핸드폰 기종 등에 따라 각자 체감하는 공공 서비스 문턱의 높이는 천차만별이다.
    빈부 격차나 세대 차이와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문제도 있다. 5,000여 건의 민원 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공공앱 ‘정부24’의 경우, 구글플레이 평점이 5점 만점에 1.7점이다. 시민들이 제법 활용하는 앱의 평점이 이 정도다. ‘로그인이 되지 않는다’와 같은 기본적인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부처별, 지자체별로 실적을 채우기 위해 저마다 공공앱을 개발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존재 자체를 모른다. 담당자들도 출시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예산만 낭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017~2021년까지 폐기됐거나 폐기 예정인 공공앱만 총 635개, 개발비는 188억 원이 넘게 투입됐다. 이중 다운로드 횟수가 1회 미만 공공앱만 무려 267개다.
    이 문제들을 ‘공공 영역은 민간처럼 경쟁하지 않으니까’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사소한 짜증부터 시간 낭비, 개인정보 유출, 때로는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사고까지, 공공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민들이 일상에서 수시로 마주하는 공공 영역의 불편과 번거로움을,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정부와 공무원의 관점으로 설계된 공공 데이터가 어떻게 사회 전반에 불편을 초래하고 차별을 만드는지, 이 과정에서 어떻게 사각지대가 생겨나는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분석해야 하는지를 10가지 키워드를 통해 단계별로 보여준다.
    알고리듬으로 대표되는 추천 시스템은 디지털 서비스의 기본이자 상식이다. 유튜브, 멜론, 넷플릭스, 쿠팡, 배달의민족까지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분석해 자동 추천 기능을 제공한다. 그런데 왜 정부 서비스는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을까? 내게 적합한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려면 정부 홈페이지 곳곳을 열심히 찾아 헤매는 걸로도 모자라 인터넷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조언을 찾아봐야 한다. 만약 공공앱이 쿠팡이나 배민만큼 쉽고 빨라진다면,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간편결제처럼 한번에 신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편리해질까? 저자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지식과 공공 분야 데이터 과학자로서 쌓아온 경험을 살려 이러한 질문에 충실히 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아직은 생소한 ‘시빅 데이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국내 저자의 첫 저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IT 기술, 데이터, 행정 제도 등을 잘 몰라도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의 불편이 정부에겐 기회가 된다”10가지 키워드로 만나는
    시민을 위한 데이터, 시빅 데이터 사용법의 모든 것
    이 책은 시빅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10가지 키워드로 구성되었다.
    먼저, 1~3장은 시빅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다룬다. 1장 ‘기회’에서는 시빅 데이터가 어떤 역사적 배경을 통해 부상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사례를 통해 공공 정책 영역에서 기술과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 흐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소개한다. 2장 ‘데이터’는 데이터 중심의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데이터 상식 세 가지를 다룬다. 3장 ‘권력’에서는 데이터와 정부 정책의 연결고리를 설명한다. 민주주의 사회, 복지국가에서 데이터는 정부라는 기계를 움직이는 일종의 기름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더 많은 데이터가 더 나은 정책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왜곡된 데이터는 차별을 강화하는 정책을 만들고, 이 차별은 세대를 잇는 견고한 불평등을 만든다는 점을 살펴본다. 4장 ‘변화’에서는 시빅 데이터로 정부를 바꾸기 위한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접근하기 쉬운 정부일수록 차별은 줄어들고, 기회는 늘린다. 이런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라면 시민이 이해하고 따르기 쉽다. 정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정신적 피로도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5~7장은 이 책의 핵심을 담고 있다. 5장은 ‘인터페이스’를 주제로 공문서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정부와 시민이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접점이 바로 공문서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공문서를 쉽게 작성할 수 있을 때 정부 서비스를 보다 편리하게 쓸 수 있다. 6장 ‘인프라’는 정부가 수집하는 데이터가 정부가 만들 수 있는 정책의 틀을 결정한다는 점을 소개한다. 많은 데이터가 아닌 필요한 데이터를 잘 모을 때, 시민의 필요를 미리 파악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7장 ‘피드백’의 경우, 보이지 않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정부가 다양한 시민의 불편함에 관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모을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개선 가능한 정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음을 주장한다.

    8장 ‘균형’은 공공 영역에서 개인정보를 포함한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 주의할 사항을 정리한다. 공공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파괴적 혁신이 아닌 안전한 혁신인 만큼, 민간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데이터를 다룰 의무가 있다. 정부가 가진 개인정보에는 시민 개개인의 연봉, 건강 등 민감한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민감한 데이터일수록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9장 ‘인재’는 공공 영역에서 데이터를 제대로 모으고 다루기 위해 어떤 인재를 모으고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 논의한다. 한 조직의 역량은 그 조직 구성원의 역량만큼 뛰어나다. 정부의 데이터 역량은 결국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데이터 역량에 달려 있다.
    10장 ‘결론’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필요 없는 일은 하지 않고 필요한 일을 하는 정부, 잘해야 하는 일을 잘하는 정부가 탁월한 정부이자 시민이 원하는 정부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시간을 아껴주면 불평등이 줄어든다”식품 지원부터 투표 방식 변경, 인도(人道) 개선 프로젝트까지
    시빅 데이터로 차별을 줄이고 기회를 늘리는 법 우리는 흔히 부자의 시간이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의 상대적 가치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 크다. 월급이 적으니 일을 많이 해야 하고, 고용 상태가 불안정하니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저자가 일하는 코드 포 아메리카에서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협력해 지역 주민들이 식품 지원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사례 중에 ‘겟캘프레시’가 있다. 주정부가 활용하는 복지 서비스 지원서에 질문할 필요가 없는 질문은 삭제하고, 반드시 물어야 하는 질문은 지원자가 가장 이해하기 쉽고, 실수하기 적은 방식으로 질문함으로써 무려 6배에 가까운 시간 단축을 이뤄낸 것이다. (본문 12p, 180p)

    미국 콜로라도주는 2014년 시험적으로 전면 우편투표를 도입했다. 굳이 투표소까지 올 필요 없이 자신이 편한 시간에 편한 곳에서 투표를 하고 그 결과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우편으로 보낼 수 있게 한 정책이다. 스탠퍼드대, 워싱턴대, UC버클리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정책 도입으로 투표율이 8퍼센트 증가했다. 표수로는 90만 표에 가깝다. 정해진 날짜에 투표 장소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지자 기존에 투표소를 찾기 힘들었던 청년, 노동자, 저학력자, 유색인종 집단에서 투표율이 더 높아졌다. 조지타운대 파멜라 허드와 도널드 모이나한 교수의 ‘행정부담 이론’에 따르면, 콜로라도주의 우편투표 정책 도입은 행정부담 중 ‘준수
    비용’을 줄여준 결과라 할 수 있다. (본문 147~148p)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대 메이커빌러티 랩(The Makability Lab)은 접근성, 지속성, 교육에 관한 상호작용 기술을 개발한다. 이곳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는 중 기존의 인도(人道)를 장애인도 걷기 편한 길로 만든 ‘프로젝트 사이드워크’가 있다.
    연구팀은 구글이 16년 전부터 수집한 방대한 거리 데이터인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실제 인도에서 휠체어를 사용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구분 기준을 만들고, 그 패턴을 인공지능에게 훈련시킨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인도와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한 결과, 시애틀 도심의 경우 무려 2,000킬로미터가 넘는 도로를 상세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본문 260~261p)

    이처럼 데이터는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이기 이전에, 포용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시민들이 겪는 문제는 그들의 목소리가 데이터가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업이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더 나은 상품을 만들 수 없듯, 정부가 시민의 목소리를 새겨 듣지 않으면 더 나은 정책을 만들 수 없다. 드러나지 않는 시민의 고통을 찾아주는 데이터가 더 나은 정책을 만드는 데이터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정부가 데이터 과학을 잘 활용하려면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으로 대단한 공공 서비스를 만들어도 시민이 쓰기에 불편하면 무용지물이다. 물론 정부 서비스를 잘 만든다고 가난이나 불평등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공공 서비스가 쉬워지면 더 많은 시민이 정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에는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다양한 사례와 근거가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여러 국제기구와 각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 자료, 주요 매체에 실린 논문을 충실히 인용해 신뢰도와 정확성을 높인 점 또한 돋보인다. 양적,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시빅 데이터 관련 자료를 찾기 힘든 현실에서, 이 책은 공공 분야 종사자들과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보고(寶庫)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