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별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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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학 > 종교 > 카톨릭 >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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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신부의 새벽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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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자 : |
최강 |
· 출판일 : |
20080721 |
| · 출판사 : |
가톨릭출판사 |
· 공급일 : |
20181031 |
| · 공급사 : |
(주)OPMS |
· 용 량 : |
412.00 KB |
| · 모바일 : |
지원가능 |
· E A N : |
B9788932111063 |
| · 유 형 :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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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대출:4 대출:0/3 예약: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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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하느님을 빡빡 머리로 만든 밴댕이 신부! 중국에서 선교 활동 중인 최강 신부의 『밴댕이 신부의 새벽 고백』. 선교 사제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보여준 의 저자가 돌아왔다. 이 책은 "밴댕이 신부"로 불리는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사건사고를 유머러스하게 들려주고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 속에서 찾아낸 삶의 의미와 지혜를 만나게 된다. 그속에는 이웃과 더불어 아름답고 행복하며 복되게 살아가는 비결, 살아가면서 한번쯤 체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랑 등을 들어 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는 욕심 없는 청렴하고 청빈한 삶의 정취를 듬뿍 느끼게 된다.
저자소개
최강 신부는 초등학교 부부 교사였던 부모님의 막내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으며, 특히 아버지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았다. 그에게 아버지는 친구이자 스승이자 도반이자 영적 동반자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일류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고등학교 3학년 때 특히 정신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진리가 무엇인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고가는 길이 있다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 사유를 하면서 대학에 가서 공부할 생각 없어졌다. 그래서 자퇴를 생각했으나, 아버지의 만류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먼 나라에 가보려는 생각으로 부산 부경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일반적인 해외여행을 위한 교통수단은 배였기 때문이다. 부경대학교를 졸업하던 24살 되던 해부터 그는 항해자로 몇 년 살았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그가 탄 배는 상선이어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우연히 파푸아뉴기니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 해변에서 독일 출신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목사는 해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그는 충격을 느꼈다. 항해사였던 그는 도박도 잘해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따는 등 그런 삶을 즐겼는데, 그날 이후 그런 모든 것들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배 안에서 8시간 근무 시간 외에는 성경을 읽었다. 성경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모든 삶이 성경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으면 그 내용은 자기 인생의 어느 지점이라고 느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는 한국외방선교회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는 “떠나라!”(루카 10,3)를 화두처럼 여기고 있었던 그였기에 교구 사제는 처음부터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들어온 수도회 또한 매력이 없었다. 한국에서 시작한 선교 수도회를 찾다보니 한국외방선교회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29세에 출가를 한다. 그는 늘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죽는 것 무엇인지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학교 교육이 자신의 관심사에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수원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등만 했다. 그는 교의신학, 특히 아시아 신학에 관심이 많아서 송천성의 신학을 주제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다. 그러나 당시 교회법 교수 신부였던 남궁 민 신부의 권유에 따라 교회법을 전공하게 되었다. 남궁 민 교수 신부는 최강 신부와 한국외방선교회 측에 교회법 전공을 권하면서 신자들에게 교회법이 더 재미있고 친숙하며, 우리를 단죄하려고 있는 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있는 법임을 알려 주려면, 이성적(理性的)이기도 하면서 그 이성을 넘길 유머가 있는 사람이 공부해야 한다며 그를 강력하게 추천하였다. 이렇게 하여 최 신부는 한국외방선교회에서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2003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로마 라테란 대학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동급생 중 가장 먼저 통과하게 되었다. 향후 중국에서 활동할 예정으로 있다. 저자 인터뷰 - 어렸을 적, 형님께서 동생 때문에 경찰 아저씨의 과제를 수행할 영광스런 기회를 포기하고 홀로 고개를 넘지 않았던 이야기,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채소밭’ 이야기며, 손 한 번 더 쓰고 몸뚱이 한 번 더 움직이는 데 따라 사람의 품위가 달라진다며 굳이 집에서도 잔 받침을 받쳐주신 어머니 등 신부님은 참 ‘좋은" 환경에서 사신 것 같습니다. 고향, 가족, 어린 시절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지요. 군중이 몰려오는 데도 배를 타고 군중을 피하신 예수님이 제겐 가장 멋있어 보입니다. 죄송하지만 머리말에도 썼듯이 저는 가능한 한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첫 질문부터 대답을 피하려는 저자 신부님께 조심스럽게 계속 여쭙자, 인터뷰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신부님도 아주 조심스럽게 다음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 성함이 최강(崔剛)이신데, 누가 어떤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주셨나요? 아버님이 지어주셨는데, 아버지는 자유로운 사고를 하신 분이어서 항렬에서도 자유로우셨습니다. 이름이란 한 번 들으면 안 잊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자녀들의 이름을 모두 외자로 지으셨습니다. 저는 막내라서 약하고 치이고 보호만 바라게 될까 봐 굳세고 강하도록 굳셀 ‘강’으로 지셨다고 하셨습니다. 진짜 강한 것은 휘어짐에도 참아내고 굳센 것이라며……. - 혹시 유아세례를 받으셨나요? 아닙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외가 쪽은 오래된 교우 집안이었지만, 친가는 가톨릭과 무관한 집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큰 부잣집으로 시집와서 신앙 이야기는 감히 꺼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두 분이 원하여 부임하게 된 산골에는 가톨릭 성당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워낙 열심이시니까 저희 형제들은 자란 후 자연스럽게 성당을 찾아갔지, 유아 세례 분위기 아니었습니다. - 그럼 성장하셔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세례명을 스테파노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세례를 받을 당시 주보성인으로는, 첫 번째 순교자이자 돌아가시기 전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과 너무도 꼭 같은 말씀을 하신 스테파노 성인 외에는 다른 성인을 생각해 볼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건 두 번째는 쉽지만, 첫 번째는 쉽지 않은 것이잖아요. 스테파노 성인은 당시까지 아무도 가지 않았던 순교 성인의 길을 예수라는 분을 위해 그분을 향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가신 것이니까요. - 한국 외방 선교회에는 언제 왜 입회하셨나요? 저는 지금 40대 초반인데, 다른 사람에 비해 출가가 늦었습니다. 29세에 출가했으니까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화두가 루카 복음 10장 3절 “가거라!”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모범생으로 공부도 잘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아무 의미가 없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게 출가였지만 당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교구 신부가 전부였는데, 교구 신부는 평생을 교구 안에서 살아야 하니까 싫었습니다. 멀리 떠날 수 있는 방법으로 배를 타고 당시 가장 멀리 느껴지는 남미까지도 갈 수 있겠기에 스물네 살부터 상선을 타고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에서 신앙 체험을 한 후부터는 무엇을 해도 다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남태평양을 지나오면서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경을 읽으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그것이 제 평생의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거라!”를 화두처럼 가지고 있었던 제게는 한국외방선교회가 제격이었지요. - “가거라!”라는 화두를 갖게 된 동기가 있는지요? 아버지는 딸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아들들에게는 외국 여행이 어려운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형을 아르헨티나까지 혼자 다녀오게 하셨습니다. 혈혈단신 외아들이셨던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유학을 떠나지 못하셨는데, 그게 아버지께는 평생 아쉬움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넓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형이 군대를 막 마치자마자 지구 반대편에 갔다 오라고 했던 거지요. 제게는 가까운 일본 여행부터 시키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외방선교회 선교 사제로 불러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어머니께서도 배 아파 낳은 자식을 하느님께서 물설고 낯선 곳에 살도록 불러 주신 게 제일 고맙다고 하시지요. - 참 훌륭하면서도 특이한 부모님이시네요. 현재 한국 외방선교회 지부와 활동하고 계시는 회원은 얼마나 되시나요? 본부는 서울 성북동에 있고, 지부는 중국, 대만,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캄보디아, 모잠비크 등 현재까지 6개국에 있습니다. 회원 수는 사제 회원이 58명이고, 신학생이 30여 명이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외방선교회 홈페이지(http://www.kfms.or.kr)를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 선교회와 수도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바로 이것이 제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일인데요, 선교회는 법적으로 ‘사도생활단’인데, 이 사도생활단이 수도회와 어떻게 다르고 왜 이것이 수도 생활과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나에 대해서 로마에서도 논란거리 중 하나입니다. 1983년 이전 법전에는 사도생활단과 수도회를 같이 다루었는데, 1983년 법전부터는 나누어 다룹니다. 역사적인 면에서 왜 교회 안에서 생겨나야만 했나?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말해야 하는데, 좀 긴 이야기지요. 간단하게 말해서 선교회와 수도회의 다른 점은, 수도 회원들은 본성상 신분이 수도자이고, 사도생활단 회원들은 신분이 재속 사제입니다. 사도생활단이 지키는 복음삼덕(정결, 청빈, 순명)은 교회법적 차원의 서원(vow)이 아니라, 회헌에 규정된 서약(promise)입니다. 서원을 풀어야 할 일이 생길 때면, 수도자의 서원은 교구나 교황청에서 풀어야 하지만 사도생활단의 서약은 회에서 풀면 됩니다. 그리고 수도 생활과 비슷한 점이면서 교구 사제와 다른 점은 ‘공동생활’입니다.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수도회 모습과 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생활을 하는데 청빈 생활을 하지 않고 사유 재산을 갖게 되면 공동생활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회헌의 규정에 따라서 청빈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것이 제 논문 전반부에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인데다 궁금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여겨져 이 내용을 책으로 펴내려고 합니다. - 신부님의 글을 보면 신부님께서 교황청 외방선교회 신부님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신 것 같고, 또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교황청 외방선교회와 한국 외방선교회와는 서로 어떤 관계가 있나요? 서로 독립된 전혀 다른 단체입니다. 교황청 외방선교회는 실제로는 이탈리아 외방선교회입니다. 교황청에서 먼저 시작을 해서 명칭에 ‘교황청’이라는 말마디가 들어간 것이지요. 이 이탈리아 외방선교회를 삐메(P.I.M.E)라고 하지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때 각국의 주교회의별로 외방선교회 설립을 권유하여, 공의회 이후 각 나라 주교회의에서 외방선교회들을 설립했지요. 그래서 미국 주교회의에서는 메리놀 외방선교회를 세웠고, 프랑스 주교회의에서는 파리 외방선교회를, 아일랜드에서는 골롬반 외방선교회를 세운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 한국 주교회의에서는 1975년에 저희 한국 외방선교회를 설립했고요. 아시아에서는 한국 외방선교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도 외방선교회를 빨리 시작했습니다만, 현재 외방 선교 업무를 그다지 활발하게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각국 외방선교회들은 같은 외방선교 사업을 수행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홀수 해마다 외방선교회 총장 모임을 갖고, 짝수 해마다 대륙별로 모임을 갖는 등 네트워크가 잘되어 있습니다. 전에 제가 필리핀에 갔을 때도 그곳 총장 신부님이 공항에 나와 주시는 등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셨지요. 저는 로마에 공부하러 갔기에 로마에서 살아야 했는데, 그곳의 수도회보다는 같은 사도생활단인 삐메에서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 외방선교회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제게 아주 좋았습니다. - ‘해피 날라리 신자’라며 소위 말하는 ‘날라리 신자’를 그리워한다고 하셨는데, 교회법 박사라는 타이틀과는 잘 맞지 않아 보입니다. 어떻게 교회법을 전공하게 되셨는지요? 저는 교의신학, 특히 아시아 신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수원 가톨릭대학교 남궁 민 교회법 교수 신부님이 너 같은 놈이 교회법을 공부해야 한다. 너무 법조문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교회법을 공부하면 교회에 충실할 수는 있겠지만 신자들에게는 도움이 덜 된다. 그러니 너 같은 놈이 공부를 해야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법이 더 재미있고 친숙하고 우리를 단죄하려고 있는 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있는 법으로서, 교회법의 존재 이유를 보다 잘 살릴 수 있다고 하시며 한국외방선교회에까지 건의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방향이 바뀐 거지요. - 향후 중국에서 활동하실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절차가 남아 있나요? 오는 8월 6일에 파견 미사를 하게 됩니다. 선교 사제에게는 파견 미사가 서품식만큼 중요합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외방선교회의 파견 미사는 곧 죽으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조선이나 베트남에서는 1~2년 안에 죽을 가능성 컸습니다. 교우들은 파견 미사 후에 선교사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선교사가 가면 2년 안에 순교할 것이니까 지상에서 부모님, 친척, 친구들, 동문수학한 친구 신부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었지요. 이런 의미를 지닌 파견 미사가 남아 있습니다. - 파견 미사에서 소감이나 계획을 말씀하시겠군요, 혹시 미리 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겐 소감이나 계획이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소감이나 계획이라는 것으로도 가져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사족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남아 있는 회원들, 가족들 신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저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그 상황에 가서, 그 상황이 제게 맞지 않다고 투덜거리거나 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제겐 선교지에 대한 어떤 꿈이나 희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제가 세상에 태어날 때 이 세상에 던져진 것처럼,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면 ‘피투’된 것처럼, 제가 그 상황에 피투된 것으로 이해하고 싶고,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것만을 충실히 생각하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제게 살라고 명령되어진 곳으로 가서 살라는 형식으로(수련 받은 대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 혹시 선교사도 은퇴가 있나요? 그리고 은퇴하시면 고국에 돌아오실 예정인지요? 선교사에겐 원칙적으로 은퇴가 없습니다. 파견되어 간 곳의 상황도 대부분 그런 은퇴 제도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은퇴는 병이 들었을 때 본인이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병든 몸일지라도 그곳 선교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거기 머물게 될 것이고, 병 때문에 선교지 교구에 짐이 되어 폐만 끼친다고 생각되어 우리 선교회의 그늘에서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면 고국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퇴입니다. - 오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평생의 화두이자 본격적인 ‘떠남’을 앞두신 신부님의 앞길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늘 함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선교지에서의 이야기도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차
- 머리말 제1장 너도 옳고 나도 옳다 형제적 공동생활 밴댕이 신부의 새벽 고백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전동 칫솔 친구 인간관계 세상 살아가는 기쁨 너도 옳고 나도 옳다 커밍 아웃 제2장 콩깍지 부부 세상 예쁜 놈 콩깍지 부부 만일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기적의 순간들 냉정한 사랑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내 친구 무히마 부운다 수녀님 제3장 빈 공간, 빈 마음 나는 모른다 불고기와 계란 비빔밥 ‘있지’ 스토리 고기 먹어 죽을 죄 길을 잃었을 때 살아나는 법 마우리찌오 신부님 생이불유 빈 공간, 빈 마음 제4장 내가 아빠? 아줌마가 무서워 3센티 낭떠러지 교회 안의 직무 연말이라 바쁘세요? 느린 삶을 기대하며 내가 아빠? 믿는 대로 될 것이다 제5장 길 잃은 별 하나가 머무는 자리 경찰은 언제 와? 웰빙 사순 딜레마 나만의 비아그라 빡빡머리 깎은 날 길 잃은 별 하나가 머무는 자리 속옷을 자주 갈아입어야 하는 이유 로마인들의 묘지에서 안녕, 천사표 큰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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