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어.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타고 전 세계 바다 속을 누비는 네모 선장과 아로낙스 박사가 너무 부러웠지. 나도 바다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아로낙스 박사처럼 되어야지, 또 그처럼 나도 바다를 탐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키웠어. 소년 시절 바라던 그 꿈은 30여년이 흘러 정말 이루어졌어. 바다에 관한 책을 옆에 끼고 살았던 나는 드디어 해양과학자가 되었고, 프랑스의 심해유인잠수정 노틸호를 타고 깊이 5,000미터가 넘는 태평양의 바다 밑바닥까지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심해로의 여행은 정말 가슴 설레는 경험이었어.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이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될 줄은 몰랐어.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지.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때론 불확실한 장래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기도 할 거야. 이런 혼란의 시기에 이정표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등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책이야. 나는 커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궁금해? 궁금하면 책을 읽으면 돼. 책속에 해답이 있거든. 위대한 과학자의 전기를 읽으며 그들의 삶을 닮으려고 노력해 보자. 그러다보면 어느새 과학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탐험기를 읽으며 용기와 굽힐 줄 모르는 투지를 길러봐. 깊고 넓은 바다나 높고 험한 산, 꽁꽁 언 극지방, 앞이 안 보이는 숲속 정글을 탐험하는 꿈을 꾸어봐. 그러면 멋진 탐험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어렸을 때 책에 몰두하면 옆에서 불이 나도 모를 정도로 집중했던 기억이 나. 한번 책을 붙들면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 책에서 지식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나면 목마를 때 찬물을 들이키는 것처럼 그렇게 시원할 수 할 수가 없었어. 당시에는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컴퓨터도 없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책 말고는 없었어. 그래서 더 책에 매달렸을지도 몰라. 책은 영화나 TV와는 달리 보면서 머릿속으로 마음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어 좋았어.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책을 읽는 버릇이 있어. 책을 보면 기분이 곧 좋아지기 때문이지.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는 코를 즐겁게 해줘. 예쁘게 꾸민 표지를 보노라면 미술관에 온 것처럼 눈이 즐거워지고. 책을 펼쳐 빼곡하게 들어찬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지. 내 서재는 사방이 책으로 꽉 차있어. 서재에 파묻혀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니 이곳이 바로 안식처라니까. 서재에서는 세계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 비행기를 타고 하루 종일 가야하는 곳도 책장을 펼치는 순간 바로 갈 수 있지. 수천 년 전의 시절로 돌아가 옛날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지질학적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공룡을 만날 수도 있어.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깊은 바다 속으로 갈 수 있고, 물고기 떼와 함께 헤엄을 칠 수 있지. 우주선을 타고 저 먼 우주공간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을 만날 수도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을 현미경 없이도 볼 수 있고, 우리 몸속을 구석구석 여행할 수도 있지. 마그마가 펄펄 끓는 지구 속으로 탐험을 떠날 수도 있고, 거친 파도를 뚫고 망망대해를 항해할 수도 있어.
이처럼 신나는 책의 바다에 풍덩 빠져 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식은 부쩍부쩍 늘어날 거야. 그러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쑥쑥 자라고 자신의 앞길이 보일 거야. 청소년기에 특히 독서가 중요한 이유이지.

글쓴이 :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원장)
서울대학교 생물교육과와 해양학과에서 공부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해양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 뉴욕 주립 대학교에서 해양 생태학으로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1부원장으로,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자원연구본부장, 선임연구본부장을 역임하였다. 지난 2004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태평양 심해 5000미터 탐사에 성공했다. 바다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북태평양해양과학기구(PICES)등 국제기구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과학기술홍보대사로 과학홍보에 힘쓰고 있다. 또한 해양관련 저서, 역서 수십 권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 : 『해양과 인간』(한국해양과학기술원, 2012) 『도심 속 바다생물』(지성사, 2011) 『바다에 오르다』(지성사, 2005)

이 안 감독은 문학작품을 영화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많은 작품이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12년 11월에 개봉하는 는 얀 마텔의 소설 를 각색한 작품이다.
작품의 선택에서부터 이 안은 결코 실망감을 주지 않는다. 문학작품을 토대로 만든 이 안의 영화들을 보면 그가 뛰어난 감독이기 이전에 얼마나 뛰어난 독서가이며 비평가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가 선택한 작품에는 인생에 대한 비유와 인생의 아이러니가 가득 차있다.
는 파이(pi)라는 이름을 지닌 한 소년의 표류기이다. 파이는 영어로 오줌과 유사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놀림을 받곤 한다. 하지만 막상 파이는 그런 놀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파이는 자신의 이름을 원주율의 무한대 안에서 이해한다.
열여섯 인도 소년 파이는 단지 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는다. 그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운동밖에 모르는 형과 함께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 인도의 상황이 불안해지자 아버지는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동물원에서 키우던 동물들을 가득 태우고 그들은 캐나다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그들을 태우고 가던 화물선이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침몰하고 만다. 파이는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보트에는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그리고 벵골 호랑이가 올라타 있었다. 하이에나는 얼룩말의 다리를 물어뜯고 오랑우탄을 죽인다. 그리고 벵골 호랑이는 하이에나를 죽여 잡아먹고 만다. 파이는 호랑이와 자신이 모두 살아남기 위해 호랑이를 길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트 위에는 언제든 자신을 먹잇감으로 만들 육식동물이 있고, 보트 아래에는 호랑이만큼이나 사나운 상어 떼가 기다리고 있다. 소년은 바다에 뛰어들 수도 그렇다고 마냥 호랑이를 두려워할 수만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호랑이를 길들이는 것뿐이다. 굶주린 호랑이가 자신을 덮치지 않도록 위험천만한 바다 위에서 호랑이와 함께 탄 보트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파이가 탄 보트는 인생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수면 아래엔 식인상어가 헤엄치고 있는 이 위험천만한 인생을 구명보트 위에서 견뎌나가고 있다. 언제 나를 덮칠 위험을 늘 곁에 두고 사는 것도 인생의 한 면모이다. 가령, 중고등학교 시절엔 공부라는 호랑이가 있어 다른 걱정과는 멀리 떨어져 지낸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공부와 성적이 가장 큰 걱정거리이지만 점점 더 다른 걱정거리들과 만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불행한 사고로 부를 수 있는 사건들은 의외로 우리 곁, 아주 가까운 곳에 늘 숨어 있다. 다행히 피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런 불행과 만날 때도 있다. 많은 문학작품들은 불행 역시 삶의 수많은 단면 중 하나라고 말해준다. 는 단순히 불행의 존재 뿐만 아니라 그 불행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일러준다. 우리는 스스로를 단속하는 마음과 지금까지의 삶이 준 지혜를 토대로 그 위험을 다스려야만 한다.
인생이 우리의 목덜미를 무는 경우도 허다하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너무 열심히 한 이유로 몸이 상해 시험을 망칠 수도 있고, 갑자기 가정 형편이 나빠지거나 가까운 친구를 사소한 오해로 잃을 수도 있다.
10대엔 10대 나름의 고민과 불행이 있다. 고민과 불행이라는 이름의 호랑이는 가정불화로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하기도 하며, 낙제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호랑이는 그 때 그 때 우리의 삶에 조금씩 얼굴을 바꿔가며 나타날 뿐이다.
에는 훌륭한 문학이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삶의 교훈이 모두 담겨 있다. 문학은 삶의 달콤함 뿐만 아니라 씁쓸함도 중요한 주제라고 말한다. 삶에서도 그렇다. 달콤하기만 한 삶은 없다. 있다 해도 그것은 항생제가 잔뜩 든 음식이나 감미료로 치장한 독약처럼 더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루하루가 쌓여 일생이 된다. 오늘의 불운은 내일의 행운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횡재가 비극의 씨앗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하루하루의 삶이 주는 고단함에 너무 아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만, 하루치의 행운에 감사하면 좀 더 풍요로운 일상이 되지 않을까?

저자
• 저자 : 강유정(영화평론가, 고려대학교 한국어문교육연구소 연구교수)
• 서울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서 「1960년대 소설의 나르시시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각각 문학평론 부문으로 당선했고, 동아일보 영화평론 부문에 입선했다. 현재 문학 계간지 『작가세계』와 문화 계간지 『쿨투라』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현재 《주간동아》, 《주간조선》, 《세계일보》 등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몇몇 지상파 라디오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을 맡고 있으며, KBS 「무비무비」를 진행 중이다. 그리고 고려대학교에서 영화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 저서 :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문학과지성사, 2012)『스무살 영화관』(민음사, 2011) 『오이디푸스의 숲』(문학과지성사, 2007)

걸어서 꼬박 4km를 가야 했던 중학교에는 교실 한쪽 벽을 막아서 만든 조그마한 도서실이 있었다.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담임선생님을 따라 몇 번 청소를 하다가 그 묵은 내 나는 곳을 알게 되었으니 그리 멋진 만남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 먼지를 털어내며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 베른, 괴테, 생텍쥐베리 등의 이름을 익히고 그들의 글을 접하면서 책 읽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학교도서관을 연구하며 사는 지금, 나와 학교도서관에 조금은 운명적인 끌림이 있었노라고 덧칠을 하여도 좋을 것이다.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은 고추 따기며 풀베기를 피해 만났던 작가와 주인공들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그 때 읽었던 책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도 그렇지만, 그 때 만났던 베르테르와 로테에 대한 생각을 적어 놓은 기억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아쉬움은 고등학교와 대학으로도 쭉 이어진다.
그나마 책에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덧칠하고, 요약하거나 나의 생각을 적어 넣기 시작한 것은 전공을 찾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니 고작 손으로 꼽을 만큼 가까운 세월뿐이다. 책과의 만남은 있었으되 추억을 만들어 간직하지 못했으니 그저 반쪽짜리 독서를 한 셈이다. 작가와의 키 재기에서 이겨 봐야겠다는 용기를 갖지 못하고 늘 주는 대로 받아먹었던 것이다.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뒤에서야 알고 앞서 읽었던 내용을 이해 한 적이 많아, 양에 쫓긴 나머지 깊이 있는 독서를 못했다는 부끄러움도 감출 수 없다. 아내와의 7년 연애 동안 주고받은 편지 첩을 보면서 배를 잡고 뒹구는 딸아이의 손에 책과 아빠의 인연을 담은 추억을 쥐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여주기 위한 독후감상문이나 독서기록장을 남기지 못한 것을 탓하거나 작심하고 쓰는 감상문을 옹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권장도서며 추천도서가 즐비하고 누군가 달아 놓은 줄거리와 해설이 함께 있는 책마저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은, 독자로서 무언가 기록하고 남긴다는 것이 자신의 부족함이나 미숙함을 꼭 드러내 보여야 할 것만 같아서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삶의 여정 속에서사랑은 길들이는 것이라는 여우의 말에 대한 느낌의 변화를, 임금과 지질학자가 상징하는 바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되짚을 수 있는 추억거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갈매기 조나단의 높이 날기 위한 외로움과 슬픔의 이유를 모범 답안처럼 암기하기 보다는 밑줄을 긋고 물음표를 던져 놓거나 일기장에 넣어 준다면,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는 한 문장을 뜻 없이 기억하는 것보다는 더 뜻 깊은 추억을 남기는 것이다. 이제는 꼭 노트나 일기장이 아니더라도 페이스 북이나 개인 홈페이지에 한 줄 또는 서너 줄씩 적어 넣어도 뒷날 과거의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충분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
다독(多讀)이 나쁘지 않지만 또 하나의 아쉬움은 천천히 깊이 읽는 즐거움을 갖지 못한 것이다. 책은 단순히 종이와 인쇄술로 정보를 담고 있는 물리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작가의 개인적 또는 사회ㆍ문화적인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다. 천천히 읽기는 이 출생의 비밀을 작가의 안내를 받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지적활동이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을 보는 눈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창 시절, 천천히 깊이 읽는 경험을 갖기를 나의 실패를 통해서 권한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태백산맥을 만나거나 선생님이 태백산맥을 추천해주는 운명적인 인연이 생겨서 ‘천천히 추억 만들기’의 첫 발을 내디디면 어떨까!

저자
• 저자 : 송기호
• 공주사범대학 도서관교육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통합 정보활용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문헌정보교육과에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도서관이 교육과정 안에서 수행하는 교육적 역할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고 실천 전략을 마련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1989년부터 사서교사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강의하였다. 한국학교도서관 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학교도서관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도에 서울특별시 교육감 표창을, 2006년도에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상, 2009년도에 한국도서관상을 수상하였다.
• 저서 : 『학교도서관운영의 실제』(한국도서관협회, 2012)『사서교사를 위한 학교도서관경영시론』(조은글터, 2010) 『통합정보활용교육과정론』(오롬DLS, 2009)

사랑하는 나의 딸,
날도 더운데 숙제와 공부하느라 힘들지? 스스로도 이야기하듯이 집중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닌 네가 하기 싫은 숙제와 공부를 하느라 책상에서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 아빠도 안쓰러움을 느끼곤 한단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혼자 방에 있을 때는 방문을 걸어잠그는 일이 흔해지길래 아직 사춘기라고 특별히 표시가 나는 건 아니지만 네게도 사춘기가 시작되는 걸 알게 되었단다. 엄마 말에 따르면 방에서 문 잠가 놓고 하는 일이래야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거나 개인블로그에 글 올리는 일, 그 외에 감춰 놓은 책을 읽는 일이라는데 아마도 다른 친구들과 가장 다른 점은 위 세 가지 중에서 책 읽는 걸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우리 딸이 언제 저렇게 컸나’하는 느낌을 줄 만큼 수준이 높은 책을 지겹지 않게 읽는 걸 보며 뿌듯해하기도 했지만 ‘쟤는 도대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은 책을 왜 반복해서 자꾸 읽는지 알 수가 없어. 덩치는 컸지만 마음은 아직도 어린이에 머물러 있는 게 분명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할 때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독서습관을 유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단다.

우리 딸은 책을 왜 읽지?
아마도 재미있으니까 읽을 걸로 생각된다. 네가 책을 아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빠가 권해도 재미없어서 못 읽는 경우가 있고, 재미를 느끼기만 하면 수준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마구 읽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재미있는 책을 읽기보다는 책을 읽으니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혹시 전에는 재미없었던 책이 다시 보니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니?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지식을 잔뜩 접하게 되면 재미는커녕 골치 아픈 느낌만 가지게 되지만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된 후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더해 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단다.
책에는 저자의 아이디어와 정성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책을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편집자의 고민이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표현되어 있어. 혹시나 재미없는 책을 만나게 되더라도 저자와 편집자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될 거야.

어른들은 왜 책을 읽으라고 하실까?
국사 교과서에서 9세기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한반도 남쪽 바다에서 해적을 소탕하고 무역을 원활하게 한 사람이 장보고라고 나와 있으면 외우기 힘들지? 하지만 장보고의 전기를 읽고 나면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장보고의 업적을 쉽게 알 수 있게 되잖아. 내용을 알면 나의 지식으로 삼는 것이 훨씬 쉬워지는 법이야. 책을 쓰는 분들마다 생각이나 글솜씨가 달라서, 비슷한 내용이지만 서로 다른 분이 쓴 책을 읽으면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단다.

그리고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접하게 되면 다른 시대를 사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단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세상에서 변치 않고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거야. 한 권의 책에서 깨달음을 얻어서 내가 살아가는 태도에 자극과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아르키메데스가 임금님으로부터 왕관이 진짜 금으로 만든 것인지 알아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그걸 알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목욕탕에서 부력을 알아내는 순간 “유레카!”라고 외치며 옷도 입지 않고 집으로 달려왔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학문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런 느낌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으니 독서란 참으로 즐겁고도 흥미로운 일이야.

아빠가 너 만할 때는 책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어. 학교에 친구가 책을 하나 들고 오면 서로 빌려 달라고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도서관도 훨씬 많아지고, 소장도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으니 한편으로는 너희 세대가 부럽기도 하다.

엄마 아빠는 지금도 틈나는 대로 독서를 하는 네 모습에서 대견함을 느끼지만 특이한 그림이나 대사를 통해 오로지 흥미만을 느끼는 독서보다는 삶의 가치와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을 많이 읽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기를 기대한다.

저자 : 예병일
• 연세대학교 원주의학대학 교수, 과학자
• 현재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생화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첨단의학이라 할 수 있는 유전자 연구에 뜻을 두고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의학의 최첨단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의학의 사회, 문화, 역사, 철학적 측면에 관심이 많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라이프스타일의학연구소 운영위원, 〈JOURNAL OF LIFESTYLE MEDICINE〉 편집위원장, 대한걷기연맹 학술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운동 의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EBS, 사이언스 TV 등 각종 매체에 패널로 참석해 흥미로운 과학과 의학 이야기, 건강을 위한 운동법을 소개하는 등 방송 활동을 하며, 신문 잡지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 저서 :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12. 의학편』(살림, 2012) 『의사를 꿈꾸는 어린이를 위한 놀라운 의학사』(해나무, 2010) 『앗, 우리 몸이 보여요!』(삼성출판사, 2006) 등 다수

내 인생에 친구가 없다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요?
때로는 친구 때문에 힘들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즐겁고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 친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문제는 좋은 친구를 내 마음대로 언제나 사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있습니다.
친구들도 알고 보면 고민 많고 변덕 많고 후회할 일을 곧잘 저지르는
나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불완전한 존재여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끝없는 양보와 이해를 거듭해야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될 수 있는 거랍니다.
그래서 진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어른이 되면, 선입견이 많아져 더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제게는 남다른 진짜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책과 나무입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구요?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식물을 연구하는 것이 직업인 산림학자이다 보니
식물을 보거나 책이나 논문과 같은 글자를
보는 시간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채웁니다.
하지만 제게 친구가 되어 주는 책은
공부하는 전공서적과는 전혀 다른 책들입니다.
머리가 아주 복잡할 때는 소설, 화가 날 때는 시집이나 에세이집,
정체되어 있는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에는 인문학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에게 손길이 갑니다.
이론을 담은 책이 아니라 마음이 닿아 고른 이런 책들은
저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 주어 일상을 완전히 잊고 떠나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신’같은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 속에 몇 시간을 빠져 있다 보면
팽팽했던 일상의 스트레스가 사라져 버려 다시 생기 충만한 내 자신이 느껴지니
제게는 무궁무진한 세상을 담고 있는 책이 관리할 필요도 없는
정말 좋은 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무도 빼놓을 수 없는 친구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보았을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동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나만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나의 나무는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내가 다가가 바라는 만큼, 내게 아낌없이 많은 것을 줍니다.
따뜻한 위로, 편안한 휴식, 반짝이는 영감 …
그 모든 것을 나무는 담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모인 숲에서 주는 피톤치드, 음이온 등등의 기운은 정신적인 것은 물론
실질적인 몸의 건강을 준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아름다운 시, 음악, 그림, 디자인 등
우리가 창작했다고 말하는 많은 부분들이 사실은 자연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무마다 단풍이 곱게 든 가을 산,
혹은 야생화가 가득 핀 산의 정상의 빛깔과 모습을
말이나 그림으로 한번 표현해 보세요. 금세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빈약한 표현으로 최대한 자연을 흉내 내려 노력하다 보면
가장 위대한 문학과 예술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의 BT산업의 기반인 신약의 원료도 식물입니다.
날아다니는 첩보로봇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결국 그 로봇의 날개는 가장 가볍고 가벼우면서도
젖지 않는 곤충의 날개에서,
즉 자연에서 모방할 것이거든요.

나무와 친구하려면 어떻게 하냐구요?

우선 밖으로 나가 주변에 있는 나무 중에
내 마음을 끄는 나무를 하나 골라보세요.
식물도감에서 이름이라도 한번 찾아보는 것은 친구에 대한 예의겠죠?
그리고 오며 가며 마음을 열어 그 친구를 바라보고 이름도 한 번씩 불러보세요.
그 다음은 아마도 나무가 알아서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여 줄 것이라고
저는 확실히 믿는답니다.
그렇게 일단 서로 마음을 주고나면 만사형통.
어느새 나무에게 많이 기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사귄 나무 아래서 언젠가 한번쯤은 제 생각도 해주세요.
좋은 친구 소개시켜주어 고마웠다고.

저자 : 이유미
• 국립수목원 연구관(산림생물조사과장), 산림학자
•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서 학부를 시작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식물분류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에서 재직 중이다.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 보전", "전국 생물다양성 조사", "국가 표준 식물명제정", "양치식물 재정리", "한반도 식물지 사업" 등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식물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 식물을 조사하고, 분류하고, 보전하고, 연구하면서 그 소중함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식물에 대한 정감어린 시선으로 <주간 한국>, <한겨레>에서 활발하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저서 : 『내 마음의 나무 여행』(진선북스, 2012) 『한국의 야생화』(다른세상, 2010) 『우리가 알아야할 우리나무 100가지』 (현암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