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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읽기란 책만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읽기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보는 것, 정독하는 것, 상상해 보는 것, 분석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책뿐만 아니라 시청각이 포함된 오감각적인 모든 분야도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읽기란 책만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읽기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보는 것, 정독하는 것,
상상해 보는 것, 분석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책뿐만 아니라 시청각이 포함된 오감각적인 모든 분야도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히치콕 영화 읽기, 햄릿 연극 읽기, 피카소 미술 읽기, 모차르트 음악 읽기 등 온갖 장르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읽으면 읽힌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나는 이번 기회에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연극 읽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프랑스문학 전공교수이면서 2009년에 창단한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로서 동시대 프랑스어권 작품을 번역하여 대학로에서 매년 1편씩 공연을 제작하고 있음).
연극은 문학에 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영상, 무용 등 총체적인 것을 아우르고 있는 폭넓은 분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는 책 중에서도 가장 안 읽은 장르가 연극 텍스트, 희곡이 아닌가 싶다. 초중고 국어 교육에서, 비중이 가장 약한 분야가 연극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로 된 책에서 서술체와 대화체가 나올 때 구별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읽는 사람을 보기가 사실 쉽지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흔히들 연극이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자연스럽거나 사실이 아니고 흉내 내고, 꾸미고, 인위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나 소설이 우리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듯이 연극도 우리 현실과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장르는 아니다.
접해 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그 세계를 알면 알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있는 무엇이 있다.
연극 읽기에 어떤 재미가 있을까? 먼저 연극 책, 희곡을 한번 펴 보자. 어떻게 쓰여 있는가?
간단히 말해, 등장인물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상황을 알려 주는 지문이 있고, 등장인물 간에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체가 있다.
작가와 작품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희곡에는 빈칸이 많다.
빈칸은 독자가 상상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그 인물을 맡은 배우가 어떻게 극적 공간을 느끼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발성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준비하게끔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희곡은 눈으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글 자체에 무대와 등장인물들을 위해 설정해 놓은 시공간과 움직임, 입체적인 스케일이 숨겨져 있다.
시나 소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로 분한 배우가 실제로 무대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것이다.
그런 다음 무대 읽기를 하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가 보자. 희곡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있고, 공연을 본 다음에 희곡을 읽을 수도 있다. 희곡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면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상상한 것이 어떻게 무대화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집중하게 된다. 반대로, 공연을 본 다음 희곡을 읽으면 무대에서 본 멋진 장면이 책에서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확인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박물관, 미술관에 가고, 연주회도 보러 가듯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려면 영화도, 연극도 보러 다녀야 한다. 그중 가장 보러 가는 습관이 안 된 분야가 연극인 것 같다. 한번이라도 가 본 적이 있으면 극장에 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가게 된다. 그러나 한 번도 가 보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공연장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편 생각해 보면, 연극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예술도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는 영화대로 멋진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만, 연극은 영화처럼 필름이나 CD, 파일로 만들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복제 가능한 예술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배우)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객 앞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 하는 공연이 똑같지 않다. 어떻게 하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서로 보지 않더라도 연결하고 지낼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이 테크닉의 시대에, 연극은 어쩌면 아주 불편한 예술일지도 모른다. 영화처럼 상영 시간이 하루에 여러 번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한번 하는 공연을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모여 같이 봐야 하니까.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수공업적인 예술인 연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드는 것이다.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작가, 연출가, 배우를 비롯하여 필수 스태프들인 무대, 조명, 의상, 분장, 조연출 등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아무것도 없는 평면의 인쇄체 글을 가지고 인간과 인간이 머리를 맞대고 상상하며 입체를 만들고 환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작가, 연출가, 배우, 스태프들이 만나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관객이 없으면 공연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의 완성은 관객과 함께이다. 관객의 유무, 호응도에 따라 공연이 살았다 죽었다 한다.
이 모든 구성 요소가 다 들어가 배합되고 일체가 되어야 성공적인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모여서 해야 하는 가장 살아 있는, 인간적인 놀이가 연극이다.
이런 멋진 연극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몰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희곡도 읽고, 무대도 읽으면서 환상적인 연극 세계로 우리 함께 떠나가 보자!
임혜경:
현재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대학원장.
극단 프랑코포니(불어권) 대표. 번역가, 연극평론가.
프랑스 정부 교육공로훈장 수훈(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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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신 여성에게 들은 얘기다. 여고 시절 친구로부터 동창 모임에 나오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단다. 외국 거주 등으로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반가운 마음에 선뜻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가 보니 소...
어느 독신 여성에게 들은 얘기다. 여고 시절 친구로부터 동창 모임에 나오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단다. 외국 거주 등으로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반가운 마음에 선뜻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가 보니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 대화가 온통 아이들 교육 얘기라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들 모임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자녀 교육에 대한 화제다.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아버지들은 교육 문제가 나오면 더 귀를 쫑긋 세운다. 남녀를 떠나 한국 사회의 공통된 고민이자 관심사가 자녀 교육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자리에서 나는 “공부를 잘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곤 한다. 이때 상대방의 표정은 대개 “뻔한 얘기 하고 계시네.”라는 식의 무덤덤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교육과 관련된 취재를 하고 글을 써 오면서 ‘확신’처럼 굳어진 것이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면 예외 없이 교육을 개혁한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입시제도, 교육제도가 또 한 번 바뀌고 여러 구호가 난무하지만 실제로 달라지는 건 없다. 앞으로도 새로 부모가 되는 사람들은 내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킬까 여전히 고민하고 불안감으로 사교육에 눈을 돌리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의 연속은 해결 방안을 본질적인 것에서 찾지 않고 입시제도 등 주변적인 것에서 구하고 있는 탓이다.
잠시 해외로 눈을 돌려 보자.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약칭 PISA)라는 게 있다. 3년마다 세계 60여 개 주요 국가의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시험인데, 각국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상호 비교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낮은 순위로 평가받은 나라들은 울상을 짓고 내부에서 비판 여론이 고조된다.
PISA의 평가과목 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읽기, 수학, 과학, 문제해결 능력 등 4개 과목이다. 국제기구인 OECD와, 평가에 참여하는 선진국들이 미래 인재들에게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능력으로 판단해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들이 첫손에 꼽은 것은 역시 읽기 능력이었다. 공부에서 근본 중의 근본이 독해력이라는 사실이 여기에서도 확인된다.
읽기 능력은 독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기를 수 없다. 책을 읽으면 우리 두뇌에는 연상 작용이 빠르게 일어난다. 평소의 내 생각과 책을 쓴 사람의 생각을 비교해 보는 과정에서 사고력과 판단력이 길러진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읽기 속도도 빨라지게 마련이다. 모든 시험이라는 것이 결국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글을 빨리 이해하고 정확히 판단하는 일 아닌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게 하는, 세속적으로 말하면 성적을 올리는 방법은 책을 꾸준하게 읽히는 것이다. 물론 독서량을 쌓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리므로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단숨에 읽기 능력을 키우는 방법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독서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 성적도 높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국어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독서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
서울대가 해마다 실시하는 신입생 설문조사에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을 파악할 수 있다. 필자가 취재해 보니 자녀를 서울대에 보낸 부모 중에는 대학 교수와 교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교육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들이니 자녀 교육에 노하우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서와 관련된 가정환경이 다른 직군보다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을 몸에 익힌 것이다. 2015년 조사에서 서울대 신입생들의 아버지 직업은 사무직이 31.2%, 전문직이 30%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역시 다른 직종의 가정에 비해 독서 친화적 환경에서 성장한 것을 배경의 하나로 추정할 수 있다.
국내 최고라는 어느 대기업에서 ‘샐러리맨의 꿈’인 사장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의 몇 가지 특징을 그 회사 관계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첫손에 꼽히는 것이 뛰어난 표현 능력이었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할 때 의사 결정권자에게 간략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사람이 나중에 사장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요점을 잡아 표현하는 능력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 배양되기 마련이다. 앞으로 더 각광받을 창의력, 상상력도 독서를 통해 키울 수 있는 대표적인 힘이다.
그러나 독서의 중요성을 말할 때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게 있다. 독서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이 독서를 한 뒤 부모와 대화하며 생각을 나누고 정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바빠서 힘들다면 교사 등 다른 이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줘야 한다. 무조건 책만 읽는다고 독서가 자기 것으로 소화되지는 않는다.
또한 처음부터 아이가 책과 친해질 수 없는 환경에 있다면, 가령 부모가 평소 책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집의 자녀라면 그 아이들은 어찌할 것인가. 도서관 등에 그 학생들을 불러내서 책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공적 차원에서 제공해야 한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서는 성인 10명 가운데 3.5명이 책을 일 년에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북 스타트 운동이나 일본 초·중·고의 아침 독서 운동도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이다. 사실 유복한 가정의 아이들은 독서 문제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소외계층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생각할수록 심각한 일이다.
부모들이 자녀 독서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독서 외면 및 경시 풍조에 기인한다. 인터넷 시대에 꼭 독서가 필요하냐는 그릇된 인식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교육열은 분명 우리의 큰 자산이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독서라는 가깝고 확실한 자녀 교육의 길을 놔두고 자꾸 멀리서 해답을 구하는 세태가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다.
홍찬식 :
고려대학교 농하학과를 졸업하였고 1987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동아일보 논설위원, 문화부 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동아일보 수석 논술위원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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