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좋아지는 순간들

어린 시절 강원도 산골에 살았던 나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시간만 나면 앞산과 뒷산을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얼굴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이어진 친구들과 놀이는 산등성이에서도 산꼭대기에서도 이루어졌다. 봄날 진달래가 피면, 진달래 한 움큼 입에 넣고 뛰어다니면서 놀았고, 여름철 다래, 가을철 지천으로 산에 널린 과일들을 쫓아다니며 친구들과 상상도 못한 즐거운 유년시절을 만끽했다.

시험만 없으면 이 모든 행복은 계속 가져갈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시험 때만 되면 즐겁던 친구들과 놀이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도, 받아든 성적표도 생각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우리 옆집에 사는 어마어마하게 공부 잘하는 형이 주는 스트레스였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가 알려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형은 맡아놓은 듯 일등을 했고, 주변 모든 어른들은 칭찬대회라도 하듯 끊임없이 형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었다. 하필 옆집에 살아서...... 비교 당하면 그렇게 내가 작아 보일 수 없었다. 일 년에 거의 모든 날은 행복했지만, 시험이 끝나는 날만 되면 하염없이 높은 우등생과 초라한 성적을 받은 나를 극명하게 대비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꼭 가져야만 했다.

그래서 옆집 형은 나에게는 잠시라도 같이 있기 싫은 존재였고, 멀리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기에 그렇게 공부를 잘할까’라는 호기심은 늘 따라다녔고, 또 나의 관찰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물론 무관심하듯,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어느 더운 여름날 나는 평상을 앞에 두고 책에 푹 빠져 있는 형을 보고야 말았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책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책을 대하는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현실에, 나는 그동안 형에게 가졌던 모든 시기와 원망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마치 전염처럼 책이 좋아지는 일이 나에게도 생겼다.

그 후로 지금까지 책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다. 책은 다양한 순간에 나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책장 넘길 때의 좋은 감촉이다. 사람마다 책장 넘기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책장은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서, 오른쪽 위 귀퉁이 부분을 살짝 꼬집듯이 잡아 왼쪽으로 낚아채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사그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 입꼬리가 올라가고, 마음의 평안함이 함께 찾아오는 느낌도 이 순간에 받을 수 있다. 현실이 실타래처럼 엉킬 때는 따뜻한 욕조에 받은 물 속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가지고 함께한다. 작가의 느낌과 생각이 편안하게 전달될 때쯤이면, 내 마음의 야단법석은 이미 정리된 지 오래다.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바쁨으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을 모셨으나, 시간은 그리고 삶은 여유부리며 책 언저리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때는 아쉽지만 제일 잘 보이는 책상머리 책꽂이에 책을 비스듬히 걸쳐둔다. 그저 제목과 책 모양이라도 자주 보기 위해...... 하지만 좋아하는 책은 내부를 보지 않더라도 매일 매일 나를 편안하게 하고, 또 변화시킨다.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 준 친구처럼. 곁에만 두고도 이렇게 훌륭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책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가끔은 계절이 너무 좋으면 책도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봄, 그리고 대학 강의실! 창밖으로 흩날리는 꽃잎. 그리고 따사로운 봄빛! 책상 위에 놓인 수업용? 책은 이미 공부라는 기능을 잃고, 흔들리는 책 주인의 마음을 잡기에는 너무 작아져 버렸다. 하지만 야외수업을 결정하고 벚꽃나무 아래 앉은 우리 한 무더기 클래스는 이제 벚꽃과 하나 되었다. 학생들 얼굴에서 손끝에서, 손끝에 닿은 책장에서 봄꽃이 가득 느껴진다. 그렇다. 책은 가끔 장소를 바꾸어 접하면 이렇게 다시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봄꽃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계절이 오면, 나는 그때 학생들과 같이 넘기던 책장과 수업이 생각난다.

내 어린 시절 영웅, 옆집 형이 선물한 책 읽는 즐거움은 중년이 된 나에게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리고 수많은 인생의 고비에서 나는 책으로 인해 즐거웠다. 여러분도 책의 즐거움과 행복한 몰입의 순간을 빨리 경험했으면 좋겠다. 책의 바스락거림, 책장의 촉감, 신간의 산뜻함, 고서의 형언하기 어려운 깊은 향내...... 책이 좋아지는 계기가 찰나의 순간에 기적처럼 여러분 곁에 함께했으면 좋겠다.

진로 진학의 왕도 독서

내 어렸을 때 꿈은 과학자였다. 이 과학자의 꿈 덕분에 중3 때 모형비행기를 만들면서 비행기와 친숙하게 되었고, 비행기와 관련된 진로를 고민하다가 고2 때 조종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중학생 시절에는 과학자들의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에디슨과 라이트형제, 노벨, 뢴트겐, 아인슈타인, 장영실과 최무선 등이었다. 또 고등학교 시절 항공 관련 진로에 관심이 많았을 때는 1·2차 세계대전과 항공역사 책을 읽으면서 나의 꿈을 구체화했다.

흔히들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리고, 쉽게 막히는 경우를 흔히 접하게 된다.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무색해 보인다. 그저 정보나 지식 검색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책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절 친구는 누구를 사귀는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 또 어떤 책을 읽었는지 등이 청소년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취미활동과 독서가 꿈을 키우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청소년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각자가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삶과 생각, 경험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청소년 시절의 독서가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본인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대학교에 진학할 때 수능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수시모집이나 입학사정관 제도 등이 그렇고 면접과 논술, 자기소개서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경향도 그렇다. 학교성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는 기업에서 직원을 공개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면접과 자기소개서는 필수가 된 지 오래됐고, 한 발 더 나아가 5분 스피치나 공개토론을 하는 기업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나는 민항기장으로 직업특성상 외국에 자주 간다. 외국에 갔을 때 호텔에서 묵게 되는데 쉬는 시간에 호텔 수영장을 자주 간다. 호텔 수영장에 가면 우리나라와는 달리 수영장 안에서 수영복을 입고 책을 읽는 외국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여행 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독서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또 지하철 안에서도 호텔수영장과 같은 독서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영장과 지하철에서 이런 모습을 언제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 많은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와 같이 독서가 몸에 배었으면 좋겠고, 독서를 통해 상상의 날개를 펴고 성층권 넘어 광활한 우주로 본인의 끼를 맘껏 발산했으면 더욱 좋겠다.

최재승 기장은
공군사관학교 졸업
공군 전투기 조종사
아시아나항공 선임기장(현)

저서
• 파일럿의 건척학개론 파일럿의 진로탐색 비행

진로를 위한 내공쌓기, 독서!글쓴이 :임성미 (독서교육전문가) “천국은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한 말이라는데, 생각할수록 맘에 듭니다. 천국에 가면 옛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잖아요. 도서관에 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들의 흔적도 도서관에 남겠지요. 천국이 도서관인 다른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 속 인물들의 심정에 공감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와 목적의식이 불끈 솟아나기도 하지요. 실제로 뇌 과학자들은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뇌의 신경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동기와 신념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도서관은 꿈을 꾸는 놀이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결코 잊을 수 없는 행운이 제게 일어났지요. 학교에 멋진 도서관이 생긴 것입니다. 제게 도서관은 새로운 놀이터였습니다. 책읽기가 얼마나 재미나던지 늘 머릿속에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뿐이었어요. 책을 많이 읽는 덕분인지 방송국에서 개최한 퀴즈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는데, 그때 아나운서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자 ‘아동문학가’가 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 을 네 권이나 출간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겠지요.
중학교에 가서 읽었던 책 중에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입니다. 그 책들은 사춘기 소녀에게 막연하지만 신비하고 심오한 정신세계로의 동경을 심어주었어요.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등 세계적인 명작들과 박노해 시인의등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또 안병욱, 김형석 철학자가 쓴 인생론 에세이를 읽고 일기장에 옮기면서 제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지요.
돌이켜 보면 제가 현재 독서교육전문가라는 직업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들에게 독서교육을 하게 된 것도 제가 오랜 세월 열혈독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서교육전문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유능한 독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먼저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교육 방법도 알아야 하지요.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 능력을 전문성, 창의성, 인성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독서능력이 있어야 발휘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독서교육전문가는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학교는 물론 기업, 도서관, 상담실, 평생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직업이랍니다.
책을 잘 읽는 방법, 유능한 독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제가 쓴 를 권하고 싶어요. 또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이라면 를 읽어 보세요. 와 같은 심리 관련 책도 읽기를 권합니다. 교육은 마음의 일이니까요.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거나 막연하다면 일단 가장 끌리는 것,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쉬운 책부터 읽어보세요. 같은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점점 전문성이 생기게 됩니다. 흥미가 같은 친구들과 진로독서동아리를 만들어서 함께 읽고 토론하고 체험활동을 하면 더욱 좋겠지요. 이렇게 책을 통해 미래에 할 일을 탐색하고, “나는 어떻게 살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어가는 것이 진로독서예요. 진로를 위한 내공쌓기, 그건 바로 독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