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만화책

까까머리 코흘리개 소년, 검은 교복 차림의 단발머리 소녀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인상적인 표지 그림이다. 만화가, 박재동씨가 그린 이 그림 속에 담긴 풍경은 잔잔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데가 있다. 만화책 읽기에 온 정신이 팔린 저 아이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 몰래 드나들던 만화가게의 풍경, 그곳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아랫목에 쌓아두고 읽던 기억들.

저자, 박인하씨는 19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으로 당선된 뒤,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면서 만화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온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평론가이다. 그는 만화평론을 '만화에 대한 엄중하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화의 예술성도 좋지만, 허무맹랑한 꿈을 주고 금지된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환상의 세계에 빠지게 만드는 만화의 즐거움 쪽이 더 좋다는 그.

책의 첫머리에서는 만화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담을 풀어놓고 이어서 한국만화계의 단상과 문제점을 지적한다. 중반부는 몇 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중심으로 그에 관련된 만화를 평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그 주제는 크게 '환상'과 '일상'으로 나뉜다. 귀신, 폭력, 엽기 등 금지된 것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만화의 영원한 주제인 지구정복 같은 환상의 영역. 그리고 가족의 문제, 착한 만화 내지는 열혈만화가 주는 감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상의 영역. 모두 만화만의 특별한 재미일 것이다.

초등학교 앞의 작은 만화가게에서 이 만화, 저 만화 골라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을, 『즐거운 만화가게』이야기.어릴 적, 아련한 기억을 들춰내는 장소가 있다. 동네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유혹의 손길을 보내던 '만화가게'. 그곳에 가면 무엇보다 재미와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감동과 기쁨과 슬픔과 희망을 코흘리게 꼬마들의 가슴에 선사해주던 만화가게. 그리고 그 만화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만화책들을 향한 향수.

적어도 386세대 이상의 성인들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아닐까 싶다. 그런 어린 시절을 이어 성인이 된 지금에도 만화와 벗하며 살아가는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즐겁게 그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만화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그 이야기들이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를 채우고 있다.

박재동 화백의 그림으로 꾸며진 표지는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올망졸망 난롯가에 모여 앉아 코를 훌쩍이며 만화를 보는 꼬마서부터 삼촌뻘의 아저씨까지. 만화가게 안에선 너나없이 만화를 향한 해바라기가 된다. 표지에서부터 추억으로 여행을 떠나라고, 어서 만화여행을 떠나는 열차를 타라고 재촉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