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만화책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고 내전에 관심이 없다. 아니, 기억조차 없다. 그것은 이 책의 한국어판을 만든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도대체 10년 전에,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수십만 명이 죽었다 한들, 그게 어제오늘 일인가? 그런 일은 늘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한다.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야. 아마 이 시대 전쟁이 일어난다면 단추 하나로 모두 끝장이 날 거야. 핵 폭탄이 터져 버리면 적도 나도 모두 끝장인데 뭐. 차라리 그게 낫지. 고통도 없고. 모두 같이 죽어 버리니까.' 그러나 전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늘 목격하게 된다. 아프간 전쟁이 그렇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그렇다. 전쟁은 언제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첨단의 무기들이 등장했다고 해서 전쟁의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역시 고통받고 있다.
지금, 세계는 그리고 우리나라는 월드컵 준비에 한창이다. 바야흐로 세계인의 대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모두들 기쁜 마음에 들떠 있는데, 전쟁 이야기라니 당치도 않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구 유고연방의 수도 사라예보에서는 1984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유고는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는 국민소득이 높았고 사회적 분위기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지금도 30～40대들은 그 당시 TV로 중계되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유고의 선남선녀들이 행진하던 모습! 아주 안정되고 만족스러운 표정들. 그것을 보면서 ‘저기 공산국가 맞아?' 하고 물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유고는 평화스러웠고 잘 살았다. 그 당시 누구도 전쟁을 예견하지 못했다.
90년대 초 유고내전과 보스니아 사태에 대한 기사들은 한결같이 그 지역이 원래 민족간의 분규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며 다민족, 다종교의 사회적 요소는 전쟁의 불씨가 될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고 썼다. 한 마디로 그 지역은 아주 ‘특이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불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회는 없다.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의 국가는 지구상에 얼마든지 많으며 단일종교, 단일민족 국가라 하더라도 이념간의 대립이나 빈부간의 대립 등 얼마든지 나뉘어질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 대립이나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자는 사회의 불안을 틈타 독재자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히틀러가 그랬고 밀로셰비치가 그랬다.
처음 이 책을 역자로부터 소개받고 출간하기로 결정한 뒤, 편집자로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애썼다. <워싱턴 포스트> 특파원으로 2년 간 전쟁을 취재하고 난 뒤, 필자는 미국의 주요 언론을 통해 그토록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전하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참상이 계속 이어지자 펜을 꺾고 보스니아를 떠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지쳤다.' 그리고 그가 느낀 울분을 이 책에 쏟아 부었다. 그의 울분을 같이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있다. 나아가 아직도 죽지 않고 있는 인간의 ‘야수성'에 대한 그의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성의 탈을 쓰고 있는 이 문명사회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유리그릇인가를, 그리고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하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