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2005년 여름

∥영원한 문학 소년, 오세영 화백이 그려 낸 문학과 만화의 만남!
오세영은 어린 시절, 조그만 들창이 달린 골방에서 수십 권의 소설책에 둘러싸여 보내곤 했다. 문학에 파묻혀 지내며 행복했던 그도 -누구나 그러하듯이- 어느 순간,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에게 현실이란 것은 문학과 달리 어리둥절하고 이해하기 힘든 세계였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외투를 걸친 것처럼, 현실은 늘 부자연스럽기만 했다. 그런 그를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만화'였다. 온갖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던 만화를 통해 그는 비로소 현실이라는 곳에 발 디딜 힘을 얻는다.[오세영-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은 그가 영원히 동경하는 문학, 그리고 그의 삶인 ‘만화'의 접점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역사 속에 감춰졌던 작가들의 작품 수록
[오세영-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에는 작가 14명의 19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지 못하던 이름들도 있다. 김만선, 김사량, 박태원, 안회남, 이근영, 이태준, 최명익, 현덕이 그들인데, 이들은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이지만 월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분단된 현실 안에서 존재마저 색이 덧칠해져야 했다. 오세영은 이런 작가들을 펜과 붓으로 불러냈다. 그 외에도 북한 작가 림종상의 작품을 그리는 등 오세영은 다른 이들이 하기 힘든 일들을 소신 있게 끌어안았다.[오세영-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이 한국 만화에서 주목 받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도 존재한다.

∥매력적인 원작의 충실한 재현!
그렇더라도 오세영은 학살이나 죽음과 같은 소재를 배제하고 당대 민중의 생활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들을 만화로 옮겼다. 주로 일제 강점기나 산업 근대화를 이뤘던 시대를 전후로 하여 빠른 발걸음 속에 놓쳐 버렸던 신민지 민중들의 모습, 산업화 이전의 사회상들을 충실히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렇게 번안을 하면서 원작의 문장 하나 날리지 않고 그대로 만화 안에 담아냈다. 예를 들자면, 대사는 말풍선으로, 상황 묘사는 칸 안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등 원작에 대한 충실한 고증 작업을 통해 한편 한편의 작품을 만들어[오세영-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을 탄생시켰다.

∥소똥 냄새마저 풍겨 나오는 그림!
그에겐 늘 ‘소똥을 그리는 작가'란 수식어가 붙어 다니곤 한다. 그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 만화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로 꼽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의 실력은[오세영-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깊게 패인 주름과 지저분한 옷, 투박한 손, 구부정한 허리를 지닌 인물들과 낮고 다양한 모양의 산들과 초가, 좁은 골목 등 그의 만화에는 왜곡되지 않은 ‘한국의 얼굴과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원작의 맛은 맛대로, 만화만의 독특한 재미 재현!
지금 까지 여러 만화가들이 문학을 만화로 번안하는 작업들을 많이 해 왔지만, 대부분이 만화의 언어를 왜곡하거나 축소한 형편이었다. 작가는 후기에 ‘만화는 문학의 시녀가 아니라 예술 장르의 당당한 주인'이라고 남겼는데, 그의 소신처럼 이 작품집은 만화가 원작에 가려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인지[오세영-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은 원작의 맛은 맛대로, 만화만의 독특한 재미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