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신화는 과연 인류에게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신화를 만들고 전하고 또한 배우는가? 이 책에 하나의 답이 있다. 저자는 신화를 만들고 반전시켜온 신화적 상상력의 근원을 묻고 답한다. 인류의 신화탄생의 사유 매뉴얼이랄까? 사람들이 만발한 꽃들에 대해 말할 때 그는 꽃을 피어올린 그 어떤 힘, 생명력에 대해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존재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신화에 매달렸던 인류의 간절함과 절실함에 대한 보고서로 읽었다. -정관용(시사평론가)

일반

신화적 상상력의 비밀로 다가가는
신화적 사유의 지도


신화의 미로를 향한 가장 정직한 도전
‘신화의 섬’으로 가는 여객선 표는 많으나 뱃길은 아직 열리지 않은 것 같다. 우리들은 여전히 수수께끼를 마저 풀지 못한 기분으로 신화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신화적 상상력의 비밀은 여전히 도전의 영역이다. 여기 또 하나의 도전기가 추가되었다.
사실 ‘신화 이야기’와 ‘이야기로서의 신화’는 차고 넘친다. 신화의 캐릭터들과 그들이 제공하는 상징과 삶의 교훈도 너무 익숙한 것이다. 미당의 시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처럼 어떤 이는 신화에서 영웅을 읽고, 어떤 이는 상징과 이미지를 얻어간다. 그러나 이것 또한 2할 남짓의 성취일 뿐이다.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으며,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가? 라는 8할쯤의 숙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은 신화의 해석을 넘어 신화의 이해를 추구한다. 그리고 신화적 상상력의 비밀을 풀기 위해 가장 정직한 길을 택했다. 신화를 만들고 재생산해낸 신화적 사유구조 즉, 신화적 사유의 패러다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저자는 신화를 만들고 다듬고 체계화시킨 신화의 사유구조를 이해한다면 신화적 상상력의 베일을 벗겨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한 편의 탐험기를 완성한 것이다.
신화의 사유구조에 대한 묵직한 접근이지만, 책은 쉽다. 교양서의 임계선을 넘지 않으려는 저자의 부단한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화적 사유 그 자체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방법, 의미를 만들고 공유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방증인 셈이다.

신화, 독특한 ‘사유공간’에서 제시된 ‘위기 극복의 답안
저자는 신화가 시대적 삶의 조건들과 결합된 독특한 ‘사유의 공간’에서 짜여지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제한다(그것을 충분히 입증해 내고 있다). 그리고 신화적 사유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재료와 동인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진정한 신화탐험임을 제안한다. 저자가 이러한 신화탐험에서 시종일관 견지하는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1. 신화는 당대의 절실한 삶의 문제에서 생겨난다.
2. 인류에게 가장 절실하고 근원적인 삶의 문제는 ‘살아져버림’과 ‘살아있음’의 모순인식이 가져오는 문제, 바로 죽음이 잉태하는 불안이다. 이 근원적 불안은 시대적 삶의 조건과 결부되어 다양한 위기와 갈등을 반영하는 문제상황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3. 이 문제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신화적 사유의 격발자가 되어 문제해결을 위한 매개자(점)를 찾아 나선다. 시대마다 특정의 사유뭉치들이 매개점이 되어 신화적 사유공간 즉 ‘신화를 직조하는 생각의 공작소’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사유공간에서 신화적 상상력을 날개를 펴 신화를 꾸며낸다. 신화의 다양성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사유공간의 구조와 구체성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4. 이러한 신화적 사유공간에서 당대의 인류가 마주한 삶의 모순과 갈등이 촘촘한 의미체계를 가진 이야기 속에서 해소 또는 해결된다. 바로 모순과 불안과 갈등이 의미체계를 만들어 그 의미체계 안에서 안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화적 사유는 의미를 생성하는 능력이며,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 의미망 속에서 당대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순을 하나로 엮여내는 매개자(어떤 존재, 영웅 등)는 증여의 원리를 통해 신화가 가진 힘을 현실화하고 확신하게 만든다.
5. 그 매개자와 증여자로서의 신화적 사유의 핵심 키워드들은 시대마다 문제의 성격에 맞게 변형되어 왔다. 수렵시대의 ‘어떤 존재’, 농경시대의 ‘생명력’, 도시문명시대의 ‘영웅’, 차축시대의 ‘신화적 인간’, 로고스시대의 ‘제도’, 과학문명과 이데올로기시대의 ‘환원과 확대’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러한 신화에 대한 일관되고, 창의적인 관점으로 중심을 잡고 저자는 다양한 세계의 신화들을 포괄하며 신화적 사유의 역사성과 계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신화를 만든 당대의 사람들의 사유방법과 계기를 유추하며 그들이 만들어 낸 사유공간을 분석하여 신화적 사유의 역사를 완성한다.

신화를 떠받치는 사유뭉치의 계통도를 찾다
이 책은 신화가 만들어지는 사유과정과 계기 그리고 독특한 사유구조를 하나의 ‘생각의 지도’처럼 펼쳐 보여준다. 마치 만발한 꽃들의 근원에 작동하는 생명력을 규명하려는 접근이다. 꽃의 생명력이 ‘생식성장’의 일환인 것처럼 신화 탄생의 생명력은 불안과 위기 극복을 위한 독특한 ‘사유공간’에서의 ‘의미의 창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대의 모순과 위기를 포괄하는 핵심 고리들이 일련의 사유뭉치로 신화의 역사에 차례차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의 자궁이라 할 수 있는 신화적 ‘사유공간’은 바로 절실한 문제와 연관된 당대 인간들의 사유뭉치, 생각의 단초가 계기가 되어 만들어 진다. 저자는 이러한 계기들을 세계의 많은 신화들 속에서 찾아 분명하고 정확하게 적시해내고 예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신화적 사유의 계통적 이해를 시도한다. 신화들에는 정식화가 가능한 보편적 사유의 구조가 있었고, 이것이 신화의 생명력이 되어 인류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유의 방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계통적 이해를 통해 신화적 상상력의 비밀을 한 꺼풀 벗기고, 신화의 의미와 가치를 보다 풍부하게 제시한다.
저자의 이러한 도전은 모든 신화를 포괄하는 신화의 구조적 체계화의 완결판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여도, 최소한 신화가 일련의 사유구조를 통해 역사성을 가지며 우리 곁에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발전하고 있음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성공적인 입론은 우리들에게 신화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저자가 신화적 사유의 패러다임을 정리하며 묵묵히 오르는 탐험의 사다리를 따라 오르다보면, 신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맥(脈)을 잡게 되는 것이다.

신화적 사유는 오늘도 계속된다
삶이 힘겹고 미래가 두려운 사람이 이상과 꿈이 실현되기에 제약이 없는 ‘생각의 놀이터’가 필요하듯이, 신화는 시대마다 하나의 신화의 사유공간을 만들어 세운다. 인류에게 풀어야 할 절실한 문제는 운명처럼 계속되고, 신화가 했던 의미체계를 만들고 공유하는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해결을 위한 ‘사유공간’을 세우는 기둥과 벽돌들로 사용된 일군의 사유뭉치들이 변모할 뿐이다. 반복 또는 재현 또는 변형을 통해 신화적 사유공간이 축조되고 인류는 이 새로운 건축물에 들어가 당대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완전한 해결이 아니다 하여도 안도하거나, 최소한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화적 사유가 갖는 생명력이라고 본다.
인류의 시원에서부터 현대 과학문명시대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펼쳐 보이는 신화적 사유의 계통도는 자기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수렵시대에는 ‘생존의 위기’라는 절실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화적 사유공간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해결해 준 매개점은 안정된 먹잇감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을 가진 의인화 또는 신격화된 ‘어떤 존재(A Being)’라는 것이다.
농경시대는 농업혁명이라는 극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인간에게 생태계의 순환에 대해 사유의 모멘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생명력’이 이곳저곳에 있음 즉, 생명력의 편재성을 확인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위기를 해결해 줄 또 하나의 ‘어떤 존재’인 ‘생명력을 가진 어떤 힘’에 기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화의 애니미즘에 대한 의존성이 해명되고, 신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희생제의도 설명된다는 것이다.
도시문명시대에 다다르자 이제 인간이 대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확대된 인간’ 즉 영웅을 매개점으로 해결책을 재구축한다. 시간이 흘러 영웅도 바뀐 인간의 삶의 조건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사람들은 어느 순간 대립과 위기의 실체가 인간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외부의 영웅찾기가 아닌 인간 내면으로 귀의하게 된다. 바로 이성을 기반으로 절대적 진리 탐구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유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 예수가 신화적 사유의 매개점이 되어 그들의 고뇌, 깨달음, 고통, 교화가 절실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고, 그들은 ‘신화적 인간’ 또는 ‘인간의 신화화’로 승격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신화적 사유방식의 일대 전회(轉回)가 되고 인간의 역사에서도 커다란 극적 결절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성의 힘이 극대화되는 로고스 시대에도 신화적 사유는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신화적 사유의 구조와 흐름을 그대로 이어간다. 사람들은 무한증여자에 대한 기다림을 제도와 국가의 역할과 기능에 엄청난 기대와 의존을 통해 해결하게 된다. 또한 무한증여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물질성이 제거되어 ‘믿음과 가치’의 형식을 갖는다. 바로 여기에 종교의 등장과 부흥의 열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현대의 과학문명과 이데올로기시대의 사유에 있어서도 재현된다. 신화가 ‘신비적 힘’을 사유하는 반면 과학정신은 원리와 법칙을 사유하지만, 신화적 사유와 과학정신은 하나의 문제를 향한 두 개의 지적 쌍둥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직면한 문제를 풀기위한 오랜 두 가지 사유방식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과학이 신화와 구별하기 위해 그토록 강조했던 ‘확실성’이라는 무기가 과학 내부의 문제제기에 의해 무너져 내리며 신화적 사유의 영역인 인간의 ‘의지’에 대한 중요한 의미부여로 과학정신의 방향이 회귀하고 있음을 양자역학의 성과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적 사유의 계통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우리는 여전히 신화적 사유의 뿌리에서 사유하고 있음을, 아니 우리가 이성의 힘으로 기록한 역사와 인간의 사유 결과물들이 결코 그 먼 옛날의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신화적 사유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적 사유의 보편적 구조와 계통적 이해를 시도하면서 다양한 신화 이해의 가능성을 확장한 이 책이, 들불같은 신화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찜찜한 그 무엇에 시달리며 캄캄한 신화의 동굴을 탐험하는 독자들에게 출구를 암시하는 한줄기 빛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