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새터민 청소년들의 마음 속 상처가 치유되는 시간, 한겨레학교 아이들의 글쓰기 수업

한겨레중고등학교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탈북과정에서 받는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남한 사회에서 받은 다양한 문화 충격을 적절히 소화해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헤 설립되었다. 학령과 학력 간의 격차를 극복하고 새터민 청소년들이 올바른 진로 선택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현재 다양한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작년과 올해 작가들의 글쓰기 강연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탈북 청소년들이 아픔과 상처, 그간 잘 알지못했던 삶의 모습들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의 일환으로 문예작품집 『달이 떴다』가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2007~2008년 에 참여한 학생 46명의 글 77편을 모은 문집이다. 탈북 청소년들이 모여 공부하는 한겨레학교 청소년들이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쓴 시와 산문 등을 통해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청소년

아는 척, 잘난 척, 그리운 척, 아픈 척, 슬픈 척, 아름다운 척하지 말라. 나는 시와 연애하는 방법을 말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시와 연애를 하려면 과장, 감상, 현학을 버려야 한다는 시에 관한 나의 믿음을 표현한 말이었다. 시를 고백적 양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그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달이 떴다」에 실린 한겨레학교 아이들의 시를 보며 나의 시작법이 다를 수도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감정을 묘사할 줄 아는 ‘시인’이 아니었던가! 그리움이 곧 삶 자체이고 전부인 아이들의 마음에서 자라는 시심(시심)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 사물이 나 대신에 말하는 경지를 향하여, 용맹정진하시라.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내면’이 없는 별종, 탈북자의 목소리들
탈북자들은 월남귀순자, 월남귀순용사, 귀순북한동포, 북한이탈주민, 새터민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다. 탈북자의 영문 표기도 최근에 와서야 ‘refugee’로 정착이 됐다. 그러나 우리 안의 이런 탈북자 명명법에는 기아와 기근의 이미지가 투사되어 있으며, 적국의 국민 또는 비국민(非國民)이라는 구별짓기의 표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은 오직 ‘남한적인 것’에 대한 일방의 적응과 동화의 길이며, ‘북한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재생산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취업, 교육, 군대, 결혼 등 생애사의 전 과정에서 탈북자들은 자신의 문화적 특징 때문에 구별되고 차별받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재현되고 유포되는 적과 동포라는 식의 관념적 탈북자의 표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로 꿈과 욕망을 발화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문화적 재현 수단을 갖게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탈북자의 경제적 적응 양상만을 갖고서 적응의 척도로 파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화를 통한 사회통합의 중요성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내 속의 어둠을 깨닫고 그 어둠을 깨치고 나갈 힘
이 책 「달이 떴다」는 2007~2008년 에 참여한 학생 46명의 글 77편을 모은 문집이다. 한겨레중고등학교(교장 곽종문)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탈북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남한 사회에서 받은 다양한 문화 충격을 적절히 소화해 잘 적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2006년 3월 1일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 근처에 설립된 통일부 산하의 ‘디딤돌 학교’다. 장기간의 학습 공백을 메워 학령과 학력 간의 격차를 극복하고, 올바른 진로를 선택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달이 떴다는 시인 박설희, 소설가 김도연, 비평가 조성면을 비롯한 전문 문인들이 2년에 걸쳐 한겨레학교 문예반 교실을 지도·운영하면서 글쓰기를 통한 아이들의 표현 욕망을 이끌어낸 결과물이다. 수업 목표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를 키우는 것,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표현해 보는 것이었다. 말하기, 읽기, 쓰기, 듣기 전반에 걸쳐 진행된 수업에는, 문학기행과행사를 곁들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글쓰기는 한층 더 원숙하고 완성도 있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그리움의 언어’였다. 수업에 참여한 박설희 시인은 해설에서 “(이 아이들의) 내면에는 살이 에이는 두만강의 바람과 압록강의 거센 물결, 서해의 밀물과 썰물이 흐르고 있다”고 회고했다. 내 속의 어둠을 자각하게 일깨워주는 것, 그 어둠을 깨치고 나갈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리움의 언어를 타전하는 마음의 인화지
46명 학생의 77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리움’이다. 한겨레학교 아이들은 북녘 하늘 밑에 두고온 부모님, 가족·친지, 친구, 학교, 고향 산천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크고 작은 추억들을 호명해 ‘그리움의 언어’를 행간에 부려놓았다. 이 점은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북한 체험에서 비롯된 네이션의 기억은 소멸될지언정 내밀한 개인의 기억까지 소거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인식하게 한다. 평론가 고영직은 해설에서 “이 문집 달이 떴다는 생의 북쪽으로 내몰린 이 아이들이 자기 바깥의 세상을 향해 그리움의 언어를 모스 부호처럼 타전한 마음의 인화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본문 해설｜
한겨레학교 아이들의 글에는 ‘진실의 힘’이 있다. 1부 부치지 못한 편지에는 북녘 산하에 두고온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시편 12편이 수록되었다. 아버지(마성훈), 엄마의 달(김향란), 바람(박은실)은 자신이 겪은 체험과 달[月]과 바람 같은 자연물에 자신의 마음을 가탁해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2부 멀고 먼 길에 수록된 산문은 시와 달리 북한에서 보낸 추억과 그리움의 정서가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월경(越境)의 상처를 다룬 찌든 인생(이정향)과 천왕봉(양금희), 자신의 월경(越境) 체험을 ‘전학여행’으로 비유하고 있는 전학여행(정별림), 남한 정착 이후의 삶의 이모저모를 다루고 있는 다람쥐의 발자국(김향)과 최악의 아빠(박은실)는 탈북 청소년 출신 ‘문사(文士)’의 출현이 머지않은 현실이 될 것임을 잘 보여준다.
3부 그 집에 다시 가지 못하리의 시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것들이다. 내 기억의 장덕산(이영광), 별찌(심현정), 따뜻했던 내 고향의 겨울(이정향), 그리운 그 집(박은실)은 남한의 문인들이 평생을 살아도 다 겪어내지 못할 시간과 아픔을 한겨레학교 아이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언제면 가볼까 그리운 그 집 / 웃음꽃이 피어나던 그 집 / 통일이 되면 그리운 그 집에 가고 싶어 / 내 마음 속이 눈물의 바다가 되어버린 그 집”(박은실, 그리운 그 집 3연).
4부 길에 대한 일곱 개의 생각에는 7편의 산문이 묶여 있다. 엄마의 편지(홍련), 상징과 알레고리 수법을 동원한 남쪽 나라로 가는 길(이정향), 북녘에서의 추억의 오솔길을 더듬는 과정을 그린 마음 속 오솔길을 따라(박은실), 그날은 언제 오려나(양철준)는 이 아이들 앞에 놓여 있는 ‘길’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5부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는 새로운 땅 남한에서 살아가면서 느낀 희망을 노래한 시들이다. 2007년 가을 문학기행 중 백일장에서 수상한 가을에 가진 새로운 희망(정효성), 수덕사 단풍(양금희)은 풋풋한 청소년의 감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손금희), 바람(황영심), 진달래(홍선화), 쪼각달, 락엽(염충혁) 등의 시들은 자연의 변화를 응시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단풍아 / 이젠 그만 길을 비켜주렴 / 내게 소중하게만 느껴지는 너를 / 무심히 밟을 수 없구나 / 언젠가는 나도 너처럼 떨어질 거니까” (양금희, 수덕사 단풍 4연)

“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락엽 위에서 / 미래의 나를 그려보며 / 불행한 사나이 / 행복을 잃었던 그 사나이를 / 용서해주련다” (염충혁, 락엽 ― 나의 아빠를 그려보며 마지막 연)

6부 산문 고향길에는 5편의 산문이 수록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표금복)과 그리운 어머니(한진희)는 힘들었던 기아의 실상과 유랑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내 인생의 사춘기(박철준),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한복금), 나의 고향(김광혁)은 월경의 과정과 고향 산천에 대한 막막한 그리움의 정서를 그려내 먹먹한 감동의 세계로 읽는 이를 안내하기에 충분하다. “아버지가 즐겨 피우시는 담배, 어머니가 즐겨 뜨시던 뜨개 바늘, 예전에는 그것이 모두 사소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왠지 그립습니다”(김광혁, 나의 고향 중에서).
7부 살며 사랑하며에 수록된 시들은 남한에서의 일상에서 느낀 크고 작은 단상들을 시의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이 시들을 보노라면 이 아이들도 남들처럼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하고 이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장래의 꿈을 위해 현재의 충동을 억누르는 일상의 모습들이 확대경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어둠을 먹고 밝은 얼굴로 다가올 새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 또한 엿볼 수 있다. 한겨레 아이들은 “누구나 원치 않는 것을 없애는 / 바람이 되고 싶다”(김원준, 바람)는 소망을 갖는가 하면, ‘초침소리’와 ‘졸음’ 그리고 ‘감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를 시로 썼다(김향란, 초침소리/ 강수향,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눈까풀/ 양철준, 졸음/ 정별림, 감기). 또, “사람 취급 안 해주”는 한국 땅에 대한 설움을 노래하거나(설일국, 매일같이 힘든 나날), 내일의 “새싹”이 되려는 욕망을 표현하기도 한다(염충혁, 새싹, 새 날의 씨앗). 그런가 하면 일상에서 느낀 사건을 시로 쓰기도 했다(박진희, 짝이 없는 운동화/ 설은주, 달/ 양금희, 아파트/ 송순정, 한줄기 빛/ 한복금, 신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7부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달[月]’에 자신의 마음을 빗대어 쓴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홍련의 문1, 권철의 달이 떴다, 설은주의 달 등의 작품들은 저 하늘의 ‘달’을 통해 이곳과 저곳 사이의 추억을 매개하고 호명하는 자연물로서 달의 심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달은 일종의 ‘달 전화기’의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달이 떴다. / 아주 크고 밝은 달이 / 그립다” (권철, 달이 떴다)

“나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허덕인다 / 칠칠야밤에 길을 잃은 어린아이마냥 /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울고 있다 / 그 울음소리로 어둠을 깨쳤으면 좋으련만 / (중략) / 나는 영원히 / 새 날의 씨앗이 되어 어둠을 밝혀주고 싶다” (염충혁, 새 날의 씨앗)

8부 첫사랑 오빠에게에는 한겨레학교 아이들의 편지글, 독후감을 모았다. 이성 친구에게 보내는 내밀한 비망록에는 ‘사랑’을 향한 언어가 진하게 배어 있다(염충혁, 친구에게/ 홍련, 첫사랑 오빠에게). ‘바리’를 생각한다(이영광), 인생 선배 ‘바리’ 언니가 준 자신감(이정향), 나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한복금)는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를 읽고 쓴 독후감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북한 사투리를 많이 써서 친근감을 갖게 했다는 평(이영광)도 있고, 북한말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 같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평(이정향)도 있다. 그러나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통해 남한 사람들이 탈북자들이 어떤 고생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는 말에는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완득이, 파이팅(정별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너무나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완득이를 통해 위로와 용기 그리고 감동을 받았음을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