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이 책은 김주영의 인간적 삶을 담은 전기(傳記)이며, 전기(電氣)에 대한 일반적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한국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고, 그동안 공기처럼 인식하며 살아온 전기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이제 곧 그날이다.
배전분할 중단 선언 5주년. 안보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전력지킴의 역사를 이 책에서 공유한다면 미래의 전력을 상상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일반

거대공기업 한국전력의 노조위원장 김주영.
그는 무려 세 번의 선거에 나와 조합원 직선으로 당선됨으로써 8년째 조합원 2만 명의
노조를 이끌고 있다.
선거를 치러본 사람들은 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숫자인가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를 만나면 의아하다.
아니 이런 사람이 거대노조 위원장을.
그에게서는 투쟁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대신 겸손의 미덕이 있다.
그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담백한 미소를 보낼 뿐이다.
그는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바를 전할 뿐이다.
진실이 통한다는 믿음을 갖고.
그래서 그에게는 친구가 많다.”
김금수 전 노사정위원장의 이 말은 그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투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노동운동의 한 가운데 서 있지만, 결코 무리수를 사용하지 않고 논쟁하고 설득하면서 엄청난 일들을 진행해 왔다.
김주영, 그는 자신이 가장 기뻤던 순간을, 2004년 배전분할 중단 선언이었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몇 대의 정권에 걸쳐 진행되어온 분할매각, 사유화의 논리를 중단시켰다.

“거친 투쟁의 유혹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왜 조직의 힘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투쟁에 앞서 우리는 합리적 대화의 힘이 통하리라 생각했고, 마침내 그것을 관련자들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인간이성의 승리라고 믿습니다. 그 바탕이 되어준 동지들에게 늘 감사하죠.”
김주영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공기업 한국전력과 전기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펴냈다.
자신의 삶, 한민족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전기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고, 한국전력이라는 기업이 한국에서 어떤 위치이고,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흔히들 ‘신의 직장’이라고 말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인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전기를 만들고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지를 외부의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이런 업무를 과연 개인적 차원, 기업 이윤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미국의 대규모 정전사태의 교훈도 자세히 전해준다.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이 공기업은 사실 희생적 노력으로 일해 온 전력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으며 지금도 그런희생 없이는 존속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준다.

이 책은 김주영의 인간적 삶을 담은 전기(傳記)이며, 전기(電氣)에 대한 일반적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한국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고, 그동안 공기처럼 인식하며 살아온 전기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이제 곧 그날이다.
배전분할 중단 선언 5주년. 안보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전력지킴의 역사를 이 책에서 공유한다면 미래의 전력을 상상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전기’ 이야기

전기는 물이나 공기, 햇빛처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전기가 인권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삶의 문제와 강하게 밀착된 전기, 그래서 추상적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삶을 규정하는 보편적 가치로서 ‘전기=인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의 역사는 1879년 경복궁의 건천궁에 첫 전기불을 밝힘으로써 시작된다. 그래서 전기는 봉건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근대화의 시초이며, 보편적 인권의 맹아로서 이 땅에 들어온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산업이었지만 일제 식민지 수탈시기에는 소위 북선개척사업의 중심산업으로서 자원수탈과 전쟁물자 생산의 수단이라는 아픈 역사적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해방이후 분단과정에서는 대부분의 전력생산설비가 있었던 북으로부터의 일방적 단전에 이어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력설비가 초토화되는 비극적 역사와 함께 이를 복구하기 위한 수많은 전력산업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 전력 노동자들의 삶이 곧 전기의 역사이며, 전기의 역사는 또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쟁이후 폐허로 변한 산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산업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5.16 이후 정부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당시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전업 등 전력 3사를 통합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를 출범시키고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정책적 지원과 자원집중을 통해 전원개발과 농어촌 전화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전기보급률 99%라는 경이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력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전기설비를 건설하면서, 때로는 정전사고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국가적인 행사나 대형 참사의 현장에서, 수해나 태풍 등 자연재해의 현장에서 전력노동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수고로움을 보태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때로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 들의 고귀한 희생과 숱한 애환은 청평 양수발전소 상부저수지가 있는 호명산 정상에서 오늘도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신자유주의 민영화, 대국민 사기극

공기업은 필요에 따라 설립되기도 하지만 설립목적을 달성하거나, 또는 산업구조나 경제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기업에 매각되기도 한다. 소위 민영화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많은 공기업들이 설립되었고 이들 공기업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0년대부터 민영화되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공기업으로 존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민영화 러시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김영삼 정부이후부터 이다. 특히 전력산업의 경우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한국전력의 경영진단이 추진되었고, 외환위기 당시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 의해 민영화를 위한 전력산업구조개편 정책, 즉 전력산업의 경쟁체제를 위한 분할 민영화 정책이 추진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를 위한 전력산업구조개편 정책은 추진과정과 정책결정과정에서 충분한 진단과 검토 과정없이 이루어졌고, 민영화를 당연한 목표로 설정하고 추진되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전력산업의 물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성과 수직통합의 경제성에 대한 논란, 그리고 전력공급의 안정성 문제,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기간산업을 외국자본에게 헐값으로 넘기게 될 경우 발생할 국부의 유출과 에너지 안보 문제 등 국가적으로 심각하게 검토해야할 사안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논리만으로 덮기에 급급했고, 사회적으로 충분히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은 생략되었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구조개편, 민영화 정책이 추진되던 시기에 영국과 미국, 호주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봉하던 앵글로색슨 국가들을 중심으로 규제완화, 민영화, 경쟁체제 등 전력산업에 대한 구조개편 정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들 국가들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정책의 실패를 넘어, 비극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전기요금이 폭등하고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였고, 영국의 경우 담합과 시장조작, 분할된 전력회사의 통합과 외국기업으로 매각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규제완화의 과정에서 파생상품 거래, 캘리포니아 전력시장 조작 등을 통해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했던 엔론은 캘리포니아 사태이후 회계조작 등 부정행위가 드러남으로써 파산하게 된다. 또한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민영화는 보다 많은 이윤창출이 중요한 목적이 됨에 따라 대폭적인 투자축소로 인한 설비의 부실을 초래했고, 급기야 2003년에는 미국 동북부지역과 캐나다 지역에 대규모 정전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민영화이후 요금폭등과 정전사태 등 비슷한 부작용을 겪게 됨으로서 구조개편 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이미 실패하고 있는 전력산업구조개편정책, 한국전력의 민영화 정책을 오히려 강도 높게 추진했다. 1999년 구조개편, 민영화 정책결정, 2001년 한국전력의 발전부문 분할과 발전경쟁단계로 진입함으로써 1단계 구조개편 정책을 마무리 했으며, 이어서 2단계 구조개편 정책인 배전분할과 민영화, 그리고 분할된 발전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조개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과 합리적 개혁 요구에 의해 2003년 노사정위원회 공동연구단이 결성되었고, 약 9개월 동안의 연구결과 배전분할 정책은 요금상승과 공급불안 등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사실상 전력산업구조개편 정책은 중단되게 되었던 것이다.

전력노동자의 애환, 그리고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지루한 싸움

저자 김주영은 자신의 한국전력 입사, 그리고 뒤이은 노동조합의 입문과정을 통해 전력노동자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 그리고 노동운동의 소신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한전입사, 그리고 연수원 교육과정과 시골지점에서의 생활을 거쳐 소속 사업장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한 노동조합 간부로서의 생활이 현재의 한전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위원장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의 직장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거기에는 온갖 규제와 간섭, 그리고 정부정책의 수단으로서 휘둘리는 공기업 임직원의 고민이 가득하고 그러한 불합리와 모순을 바꿔내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는 공기업 노동조합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민영화는 곧바로 공공성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전력노동조합은 구조개편, 민영화에 반대한다. 외환위기 당시 한전을 팔아서라도 나라 빚을 갚겠다고 졸속적으로 결정된 구조개편 정책에 대항하여 무려 10년간에 걸친 노동조합의 투쟁이 있었다. 1999년의 국회의 구조개편 법률제정에 맞선 국민청원을 시작으로, 2000년의 파업직전까지 가는 저항, 그리고 2003년 배전분할정책 중단을 위한 공동연구단 구성 요구 등 때로는 합리적 정책요구로 때로는 노동조합의 파업을 무기로 정부정책에 대항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4년 6월 정부의 배전분할 정책중단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6년 이상 노정 및 노사갈등의 요인이었던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과 한국전력 민영화 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누가 이들의 길고도 힘든 싸움의 과정을 단지 밥그릇 챙기기로만 매도할 것인가?

한국 전력산업의 진정한 개혁,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

한국의 공기업은 불쌍하다. 표가 필요하면 공기업을 패면 되고, 경제가 나빠지면 공기업을 이용하면 되고, 그러다 선심이라도 써야 된다면 공기업에 낙하산 내려 보내면 된다. 때로는 정부 정책의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한다. 그러나 그로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 또한 공기업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그래서 한국의 공기업은 동네북이 되고 늘 개혁의 대상이 된다.
한국전력의 개혁은 분할 민영화를 위한 구조개편 정책이 아니다. 이윤을 목적으로하는 사기업의 효율성이 전력산업의 정책 목표가 아니라 보편적 서비스의 지속적 제공과 더불어 에너지 수급안정이라는 공공성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불과 몇 십년 후면 다가올 화석에너지의 고갈이라는 예정된 위기에 대비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분단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시대를 위해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공기업의 올바른 개혁의 방향은 전부 팔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공참여적 책임경영체제 도입을 중심으로 하는 공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가장 최우선 되어야 한다. 그리고 화석에너지 의존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 진정한 개혁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공기업 노조위원장의 푸념과 하소연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