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예술의 지원과 후원은 예술 행위에 대한 보상의 형태로 나타났다. 예술 행위는 노동의 한 형태이며, 그에 대한 보상은 예술 행위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로써 받은 보상은 예술가의 생활 기반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예술 창조의 물적, 정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일반

고대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예술에 대한 지원과 후원에 관한 6명의 역사 학자들이 쓴 『한국의 예술 지원사』가 미메시스에서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문화사를 전체사로서 다루거나, 좁은 의미에서 예술사 또는 미술사 등 높은 품격의 미술, 문학, 음악에 관한 인간 활동을 연구 대상으로 한 적은 있으나, 계급과 계층을 막론하고 예술 후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누가 누구를 후원했는지, 구체적인 형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를 밝혀줄 만한 문헌 자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이 책은 각종 역사 자료 속에서 예술 지원이나 후원에 대한 사례와 제도를 찾아내어 문화 예술 지원 시스템이 우리 역사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즉 고대로부터 조선 시대까지 각 시대의 예술이 한국사에서 정치 사회의 변동과 관련하여 어떻게 분화, 발전하여 왔는가를 개관하고 있다. 예술의 국가적 후원은 국가의 성장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예술 또한 제도의 틀 안에서 관리되었으므로 제도와 관청의 설치 과정도 함께 다루었다. 또한 기록에 나타난 예술가 및 장인들의 신분과 각 분야의 활동 양상, 기술의 전수 과정 및 생활상을 검토하고 각 시대별로 후원과 지원이 갖는 성격과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로써 예술 후원과 지원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닌, 라는 방식으로 예술 발전에 기여해 왔음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출판 사업의 일환인 의 세 번째 책으로 기획되었다(ARKO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ts Council Korea의 영문 약자). 아르코북스는 앞으로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문화와 예술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진단함으로써 문화 예술 정책 개발을 위한 학술적,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지역에 기반한 공동체 중심 퍼포먼스를 소개하고 있는 『지역 예술 운동』(2008년 8월 출간)이 첫 번째 책이며, 예술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학제간 탐구를 시도한 『공공성』(2008년 12월 출간)이 그 두 번째 책이다. 서울이라는 구체적 삶의 도시에서 벌어진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공간언어를 살펴보는 『도시의 죽음을 기억하라』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의 내용
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예술의 지원과 후원은 예술 행위에 대한 보상의 형태로 나타났다. 예술 행위는 노동의 한 형태이며, 그에 대한 보상은 예술 행위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로써 받은 보상은 예술가의 생활 기반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예술 창조의 물적, 정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제1장에서는 고대 예술에 대한 지원 및 후원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중국과의 접촉을 통해 예술 제도와 악가무와 연희 등이 도입되었으며, 주된 목적은 정치적 질서를 이루는 한편으로 조화와 절제를 구현하는 데 있었다. 국왕은 예술 행위의 주요한 수요자이자 후원자였다. 가야의 춤을 춘 능안에게 문무왕이 포상한 것이나 헌강왕이 처용무를 추었던 용왕의 아들에게 정사(政事)를 맡겼던 것, 그리고 상염무의 모습을 본떠 공인(公人)에게 그리게 함으로써 후세의 사람에게 보이게 했다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국왕은 속악을 설행하는 연희자나 그 전승에서 가장 주요한 후원자였다. 그리하여 이들 연희자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편제되고 관리되었다. 연희와 예술의 주요한 수요자 가운데 하나로 귀족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불사(佛事)의 조영에서 우수한 장인을 초치하는 등으로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제2장에서는 고려 시대 예술 후원의 양상을 다루었다. 고려의 예술은 왕실을 중심으로 한 호화로운 귀족 생활과 사원 중심의 신앙 활동에서 발달이 촉진되었다. 오늘까지 전하는 고려 시대의 유물이나 유적 가운데에는 그러한 사실을 반영하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곧 고려 예술은 귀족 사회의 발전과 함께 난숙해졌으며, 그리하여 귀족 중심의 우아하고 세련된 특징을 드러낸다.
고대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는 국왕이었다. 국왕은 정치적 권위와 위상을 과시하는 한편으로, 축제와 연희를 통하여 사회적 긴장감을 줄이고 국가 질서와 통합ㅇ르 제고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랐다. 이에 고려 시대 국왕이 예술 활동을 즐기고 후원하였던 사실을 알려주는 기록이 다수 나타나는데, 다만 그것은 주로 국왕의 부덕과 실정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곧 유교적 정치 이념을 수용했던 위정자들에게는 국왕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과 후원은 유교 이념과 맞지 않는 행위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고려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즐겼다. 고려 시대 최고의 완상품은 청자였다. 고려청자는 북송 말 중국의 상류 사회에서 이라는 평가 속에서 최고의 소장품으로 여겨졌다. 문벌 귀족들은 성대한 연희를 통하여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명예를 드높이고자 하였다. 이로써 연희를 담당할 예술인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직업적인 예술인들이 널리 성장하게 되었다. 예술 행위에 대한 일정한 대가로 가계를 꾸려가는 전문 예술인들의 성장은 고려 사회에 전통적인 민속극 음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 사원 또한 문화 예술의 커다란 후원처였다. 경제적 기반이 넉넉한 사원들은 공예인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했으며, 여러 분야의 장인들이 모여들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에 따라 사원은 우수한 공예품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불교 사원은 불상이나 불구의 제작을 위하여 목공이나 금속 가공 기술을 갖춘 이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원에 소속된 공예인들은 경제적 안정을 토대로 우수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제3장에서는 조선 시대 음악과 음악인에 대한 후원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음악 소통은 음악(작품), 연주자, 감상자를 모두 갖춘 형태로 이루어진다. 단순한 취미 이상의, 전문 음악인으로서 예술적 자질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연주 능력은 연주자로서의 최고 대우를 보장받는 일이고 보다 안정된 후원 제도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 경제력의 향상과 함께 그 어느 시기에 비해 예술의 향유층이 두터워진다.
조선 왕실의 음악 연주를 가능하게 한 기관으로 장악원이 있었으며, 각 지방 관아에서는 관아 규모에서 필요한 음악을 공급하기 위해 교방(敎坊)을 두어 노래와 춤은 물론 악기를 익힌 기생(妓生)을 여기에 소속시켰다. 군영에서는 군사 훈련에 참가하는 동시에, 관아의 행사에, 또 민간의 각종 음악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제4장에서는 조선 시대 연희 공연에 대한 지원 및 후원의 양상을 다루었다. 연희(演戱)는 우리말로는 굿, 놀이, 놀음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고, 한자말로는 잡희(雜戱), 백희(百戱), 백희 가무, 잡기 등으로도 불렸다. 대표적인 연희는 가면극, 꼭두각실놀음, 골계희(滑稽戱), 줄타기, 땅재주, 솟대 타기, 무당굿 놀이, 판소리 등이다. 연희가 연행되는 행사로는, 나례희(儺禮戱), 부묘(?廟), 사신 맞이 연희 등 궁중이나 관청이 주최한 국가 차원의 공적인 행사와 문희연(聞喜宴), 회갑이나 진갑 등의 생일잔치나 회혼례와 같은 각종 민간 차원의 사적인 행사가 있었다. 여기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과 민간 차원의 지원으로 나뉘어 다루고 있다.
제5장에서는 조선 시대 화가와 후원의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로 도화서에 소속되어 국가로부터 재정적, 신분적 지원을 받으며 국가의 필요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화원(花園)과 유화파(儒畵派)인 사인(士人) 화가 및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활동을 한 중인층 직업 화가로 나눌 수 있다. 화원들은 도화서에 소속되어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한편 국왕 및 당대 지배층의 특별한 후원 속에서 도화 활동에 전념하였다. 이들 중 국왕의 어진을 그린 화가나 그림을 매우 잘 그린 화원은 특별한 예우와 지원을 받았고, 국가의 중요한 회사가 이을 때 시험으로 방외 화사들을 선발하는 등 실력을 위주로 화명(畵名)을 쌓도록 하는 예술 환경 조성에 이바지하였다.
사인 화가들은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자신을 후원하는 일군의 교유 관계 속에서 회화 활동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가며 화명을 얻었다. 또 중인층에 속하는 직업 화가들 역시 시회(詩會)와 같은 동류 예술가들과의 교유의 장 안에서 창작 활동을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재능을 인정한 특정 사대부나 부유한 집안의 후우언자를 통해 금전적 지원 외에 기숙처를 제공받거나 이들의 제택이나 별서에서 일정 기관 환대받으며 함께 소장품을 감상하고 품평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제6장에서는 조선 시대 공예 정책과 지원 양상을 살펴보았다. 공예인은 공장(工匠)으로 불리던 장인바치들로서 국가 관청에 예속되어 있었다. 이를 흔히 관영 수공업이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 공예 정책 역시 왕조 국가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적 수요에 따라 좌우된 측면이 강했다. 공예 정책은 두 가지 이념적 성향에 기반을 두었는데, 첫째, 일정한 기술 수준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제작 형식상의 기준을 마련하여 보다 질적 수준이 높은 공예품을 법도에 맞게 제작하기 위한 제도나 정책 시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고, 둘째, 각종 금제 절목을 통해 고급 공예품의 제작을 통제하고, 그 사용에서도 거칠고 순박한 것을 숭검(崇儉) 정신과 결부시켜 예화와 풍교를 도탑게 하는 요체로 강조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엄격한 형식적 규범을 정하고, 그 기준을 준용케 함으로써 정교한 공예품을 생산했으며, 사치 폐풍을 경계하고 민풍사습(民風士習)의 교화를 도모하기 위해 질박한 것을 강조하는 절용주의적 경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