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2003년 부커상 수상작

사춘기 그 자체에 대한 은유이자 미국 하류층의 어두운 심장부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뒤틀린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
미국에 대한 불안과 매혹을 반영한 블랙 코미디
『버논 갓 리틀』은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과 유사한 집단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된 한 16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이다. 열여섯 명이나 되는 반 친구들을 집단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텍사스의 십대 소년이 맞닥뜨리는 운명을 통해 머릿속이 텅 빈 경찰들, 변태 성욕에 사로잡힌 교사와 의사, 세상일에 무심한 중년 여성들의 행태,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미국의 상업 문화가 십대들이 쓰는 비속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DBC 피에르의 데뷔작인 이 소설에 대해 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존 케어리는 “현대 미국에 대한 우리의 불안과 매혹을 반영한 번득이는 블랙 코미디”라고 묘사했다.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The Man Booker Prize for Fiction)은 1969년 부커 맥코넬(Booker McConnell)에 의해 제정되었으며, 해마다 지난 1년간 영연방 국가에서 영어로 쓰여진 소설 중 수상작을 선정, 수상하는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다.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에 속하는 이 상은 출판과 독서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 트러스트의 후원을 받아 부커사의 주관으로 운영되며 영미권 대중문학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5인 중 4인이 표를 던진 『버논 갓 리틀』은 2003년 수상 작품으로 결정되었으며, “언어가 무척 생생하고, 독창적”이라는 게 심사위원단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스릴과 코미디가 서로를 강화시킨 이 시대의 동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칭찬해야 할 점은 저자가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의도적으로 나를 겨냥하는 것만 같고, 막 피기 시작한 성년의 감수성으로 세상이 황금 단지가 아니라 똥오줌 단지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고, 아직도 엄마의 젖이나 빨아야 한다는 수치심 때문에 일이 더욱 꼬여만 가는 그 시기를 다룬 것이다.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불의로 가득한 버논의 설명을 듣다 보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오른다. 아울러 허클베리 핀처럼 한 잔 거나하게 걸친 주인공 버논은 타고난 천진난만함으로 미국 사회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 소년의 탈출을 도운 것은 뗏목이 아니라 그레이하운드 버스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 속에 담겨있는 선을 찾는 것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파란 만장한 버논의 여정이 드러내는 것은 에미넴 세대를 대변하는 반항아의 모습이자, 사형수 감방마저 존중받아 마땅한 거주지로 바꾸어놓는 사랑스러운 십대 소년의 모습이다. 재미 가득한 모험 이야기이면서 현대 미국에 대한 가차없는 풍자를 담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은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홀든 콜필드에서 제임스 딘에 이르는 미국이 낳은 십대 반항아의 계보를 잇는다. 따라서『버논 갓 리틀』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주인공인 버논 자신인 것이다. 저자는 비뚤어진 매력에 때로는 유용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십대 소년의성격을 모든 면에서 믿음이 가도록 그려내었다.

엄청난 속도감과 유쾌한 풍자, 영화화 결정
저자는 16세 소년의 순진무구함과 냉소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고스란히 잡아냄으로써 정신은 군것질과 텔레비전에 빼앗기고, 감각은 엉터리 경찰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 때문에 완전히 마비되어 자신의 감정이 진정인지 연기인지 헷갈리게 된 미국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사는 소도시의 협소함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며, 내밀하고 관능적인 이미저리가 뒤엉켜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 몰아넣어 흠뻑 땀에 젖게 하고, 석유 펌프가 있고 육체적 도덕적으로 한껏 풀어진 사람들이 사는 미국 남부의 한 가운데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이어 독자들은 점점 속도가 붙는 줄거리를 숨가쁘게 따라가다가 이윽고 난데없이 방향을 틀어 엄청난 만족감을 안겨주는 대단원과 만나게 된다.
엄청난 속도감과 유쾌한 풍자, 그리고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목소리와 깔끔한 대단원에 이르기까지 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악한 소설 속에는 없는 것이 없다. 문단에 시끄러운 소음을 불러일으키고 이미 영화 제작권까지 거래가 끝난 이 소설은 기발한 블랙 유머로 미국 하류층의 어두운 심장부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내보인다. 이 불한당의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인터파크 제공］